□ 박춘호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올 여름부터 한일간에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꽁치분쟁을 보고 있으면 꽁치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이제 한일 양국은 한 걸음도 양보할 수 없는 극한적 대립상태에 이르렀다. 이 문제는 한·일 외에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깊이 개입되어 있어서 궁극적으로 한, 일, 러 3개국의 원만한 합의가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 따라서 이 문제는 상당히 오래 갈 전망이다.우리나라 EEZ 중요성 인식 부족한일간의 어업문제는 간헐적으로 수 백년 계속 되어왔다. 근년에 이르러서는 1970년대 중반에 유엔(UN)에서 배타적 경제수역(EEZ) 제도가 합의되어 1977년부터 주요 해양국들이 200해리(370.4 km)까지의 EEZ를 선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해양법협약에서는 EEZ내에서의 연안국의 관할권을 ‘주권적 권리’로 확립했다. 따라서 연안국의 허가 없이는 한 발도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어업 앞에 커다란 암초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아직도 우리나라의 EEZ에 대한 인식은 1965년 한·일어업협정 당시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한·일, 한·중, 그리고 우리가 진출하고 있는 여러 원양어업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1998년의 한·일어업협정에 관한 찬반논의도 EEZ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었으면 그렇게 이상하게 전개될 필요가 없었다.EEZ 때문에 종전에 일본 연안 12해리 밖에서 조업할 수 있었던 우리 어선들이 새 협정 하에서는 35해리 밖으로 밀려나오게 되었는데 이것은 새 협정 때문이 아니라 EEZ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꽁치어선들도 더 좋은 어장을 찾는 과정에서 남부 쿠릴열도의 EEZ를 찾게 된 것이다.이 해역은 일·러간 영토분쟁해역이다. 우리로서는 우리가 러시아와의 합의 하에 이 해역에 출어할 경우 일본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한번 더 생각했어야 할 문제였다. 우리는 결국 일·러의 영토분쟁에 말려들 뻔했던지 이미 말려들고 있는 느낌이다.그래서 요즘 일부에서 한·일간의 꽁치어업문제는 정부의 외교적 미숙으로 몰아붙이고 있는데, 사실은 EEZ와 영토분쟁의 두 가지 측면을 냉정히 살펴보면 우리의 교섭의 잘잘못으로 좌우될 수 있는 성격은 결코 아니다. 나아가서 금년에 남쿠릴 EEZ에서 한 어기동안 무사히 조업할 수 있었던 것을 하나의 큰 성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한·일간 뿐 아니라 한·중, 그리고 원양어업에 있어서 여러 문제는 그 성격상 외교적 교섭의 일시적 성공이나 미숙으로 좌우되지 않을 전망이다. 한·일 양국이 생선을 안 먹거나 지구상에서 바다가 없어지기 전에는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꽁치분쟁 해결 정부-업계 힘모아야따라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일은 백해무익한 집안싸움을 그만하고 우리의 꽁치어업을 살리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이것은 특별한 묘책은 없으니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마주 대고 지혜를 찾는 길 밖에는 없다. 이 단계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할 한가지 사실은 국가간의 관계는 상호적이고 호혜적이므로, 우리가 일·러의 EEZ에 입어하려면 그들도 우리의 EEZ에 와야 하는데, 우리의 EEZ내에 그들이 바라는 자원이 과연 얼마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우방국이나 영원한 적성국은 없다. 단지 영원한 이해관계만이 있다는 말을 한번 더 되새겨보자. 그리고 감정과 오해는 마침내 물리적 힘의 제재를 받게되는 냉혹한 역사상의 교훈도 한번 더 곱씹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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