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욱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벌써 농사를 시작한지 20년이 넘은 나로서는 세월이 지날수록 농사가 어렵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전에는 작물의 생육상태와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때 그때 적절한 사양관리를 하면 별 문제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작물을 선택할 것인가, 출하는 언제할 것인가를 항상 고민해야 하며, 경영자금 관리와 인부들 수급관리까지 내 머리속을 복잡하게 엉클어 놓는다.또다른 고민은 이제 농민들도 세계 시장과 경쟁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권으로 묶이면서 수입되지 않는 농산물이 없고, 가격 또한 낮아 헐값에 거래되고 있어 농민들을 압박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농민 스스로 세계의 농작물 작황과 시장흐름까지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실정이다.돼지 1,200두와 밭농사 1만여평을 경영하는 나는 우리 지역에서 앞서가는 농민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도 항상 불안하고, 스스로 많이 부족함을 느끼는데, 다른 농민들이라고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근 들어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이 이상기온 현상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지만, 아직도 농업은 하늘과 동업해야 한다. 그런데 90년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은 농민들이 희미하게나마 붙잡고 있던 희망도 날려보내려 하고 있다. 농민들은 하루 3∼4시간,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밤낮으로 물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단순 경제상식으로 생각하면 이 같은 가뭄에서는 농사를 포기하고 쉬는 것이 이익이다. 경제신문에서 주식 전문가들이 말하는 투자요령 중 시장이 불안하고 하락세가 지속될 때는 투자를 쉬는 것이 버는 것이라고 조언하곤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종이쪽지를 다루는 주식투자와 생명을 다루는 농업은 다르다. 생산비조차 건질 수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양수기와 수작업으로 물대기를 하는 농민들을 도시민들은 무모하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농민들의 농작물에 대한 애정은 도시민들이 자식들에게 느끼는 그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농업은 이렇듯 경제적 가치와 정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하는 복합적 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농업을 단순한 것, 쉬운 것, 가장 무능력한 사람이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가끔 TV드라마에서 사업에 실패했거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지’라고 말한다. 현실을 잘 알지 못하고 내뱉는 말이리라. 이제는 농업도 전문직이고 농민들도 많은 공부와 노력을 통해 전문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세상도 농업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자리매김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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