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실 경북대 농업경제학과 교수지혜로운 정부는 농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거만한 정부는 농민의 절규조차 듣지 못한다. 최근 한·중 무역마찰을 둘러싸고 보이는 정부와 언론의 태도가 이런 식이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당리당략에 편승해 정부의 실정을 비난할 게 아니라, 이성에 따라 사태를 냉철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두차례에 걸친 한·중 무역마찰을 겪으면서 대다수 언론은 ‘긁어 부스럼’이라느니, ‘말로 주고 되로 받을 짓’으로 비유하면서 ‘소탐대실론’을 퍼뜨렸다. 이 말 한마디는 국내 마늘 농가를 절망케 하는 ‘촌철살인’의 위력을 발휘했다. 결과적으로 억지주장을 하는 중국을 도왔다. 후생경제학은 화폐적 시장가치의 힘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전제로 개별 국민이 느끼는 행복감의 크기를 강조하고 있다. 진짜 ‘소탐대실’은 42만 마늘농가와 4백50만 농민의 생업을 연쇄적으로 앗아갈 마늘수입을 대수롭게 보지 않는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긴급관세 중간 검토는 조치의 타당성을 재확인하는 장치로,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 나면 조치를 해제할 수도 있다. 일부 신문은 벌써 마늘 긴급관세조치 무용론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것이 의도된 것이라면 몇 가지 짚어둘 점이 있다.우선 긴급관세 조치를 할 때 애초 계획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지난해 7월 조치를 대폭 완화하는 바람에 사실 재검토하는 과정 자체가 무의미하다. 제도적으로 토지용역비가 거의 무상에 가까운 중국의 농산물과 우리 농산물의 가격경쟁력을 긴급관세 해제의 판정자료로 쓰는 것도 의미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 긴급관세 조치가 해제·완화되면 앞으로 1∼2년 안에 국내 마늘산업 붕괴는 물론, 농업 전반에 대혼란이 일어날 게 뻔하다. 우리 농업이 쇠퇴일로를 걷는 이유는 농업에 대한 철학과 장기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마늘사태 역시 과거부터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이런 원인이 세습된 결과다. 책임있는 정부와 정당이 되려면 한국형 농업상을 세울 수 있는 ‘농정마스터플랜’을 세우는데 우선 진력해야 한다. 외교통상부는 국제통상관례상 규칙을 어긴 중국쪽에 지난해 6월의 긴급관세조치를 재적용할 수 있도록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 농림부는 마늘농가 소득대책은 물론, 작부체계 혼란에 따른 다른 농업기반 붕괴를 막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납득하기 힘든 저자세로 가져온 농민의 손실은 반드시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또 언론은 ‘소탐대실론’이 중국을 돕는 중대한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정정보도 해야 한다.중요한 것은 지금 하고 있는 긴급관세조치 재검토가 해제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가 아니라, 2000년 6월의 초기상태로 돌아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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