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태풍,장마…그리고 폭설 - 고비고비 찾아오는 농가 시름이 복 수 / 농업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율포2리 함박산포도밭우수를 사흘 앞두고 전국에 또 폭설이 내렸다.단축 수업을 해 일찍 끝난 아이들을 데리러 나가는 도중 차안의 라디오는 내내 전국의 교통 상황을 알리고 있었다. 별 사고만 나지 않는다면 퇴근길이 늦어지고 불편한 것이야 그래도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을 입구 왼편에 빛나네 배 과수원을 보니 남의 일 같지 않다. 농사 다 지어 놓은 배를 더이상 까치에게 빼앗길 수 없다며 그 넓은 면적에 그물망을 친 밭이다. 경사와 굴곡이 심한 밭이라 기술상의 어려움이 있어 영구적인 방조망 시설은 못하고 전문 인력을 투입해 어렵사리 그물을 치는데 이백만원이 들었단다. 큰 돈이 들어간 터여서 한 해 더 쓰려고 그물망을 걷어 내지 않고 두었는데 그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지난번 대폭설 때 그물 위에 눈이 쌓여 배나무를 누르자 배나무 갈라지는 소리가 마을 입구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단다. 맥이 빠졌는지 그 부지런한 빛나 아빠도 만신창이가 된 배과수원을 손대지 않고 그냥 두었다. 문제의 그 그물 위에 오늘 또 하얗게 눈이 쌓여 있다. 누구네는 하우스가 주저앉았고 누구네는 축사지붕이 내려앉았다고들 했었다. 이 밤이 지나고 날이 밝으면 또 얼마나 많은 비닐하우스며 축사 지붕이 더 내려앉았다고들 할지 걱정이다. 모두가 생계와 직결되어 있는 터라 마음이 아프다.오월에 비가 너무 잦으면 순이 웃자라서 개화기 때 꽃떨이 현상이 일어나기 쉽고 특히 유월 상순의 개화기 때 비가 자주 내려 저온 현상이 생기면 개화에는 치명적이다. 태풍으로 덕이 넘어 가기도 하고 수확기에 비가 잦으면 열과로 인해 다 지어 놓은 농사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듯 비가 많아도 걱정이지만 작년처럼 가뭄이 심한 해도 그 못지않은 고충이 따른다. 작년에는 겨울 가뭄에 이어 봄 내내 가뭄이 계속 되더니 개화기가 지나고 포도알이 쑥쑥 커지는 유월 중순이 지나도록 시원한 비 한번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포도밭 아래로 흐르는 농수로의 물을 빌려서 포도밭에 대어 주기로 했다. 온 포도밭에 분수 호스를 깔고 물대는 작업이 시작됐다. 우리 부부의 싸움은 이런 경우 잘 일어난다. 포도나무 뿌리에 물 적셔 주는 것이, 허기진 자식의 입으로 밥 들어가는 모습 바라보는 어미의 심정과도 같이 흡족해 지는 나는, 한 이랑도 빠짐없이 골고루 다 적셔 주려고 욕심을 낸다. 아내의 꼴이 이미 거지 이상 가는 몰골이 되어 있을 때쯤이면 주어진 상황이 화가 나는 남편은, 이 넓은 바닥 못 적셔 주는 곳도 있지 그만 하자고 한다. 주거니 받거니 자기 주장을 몇번씩 되풀이하다 보면 이미 언성은 높아지고 있다. 냉해, 가뭄, 태풍, 장마 등 날씨로 인해 이겨내야 할 고비, 넘어야 할 산은 수도 없이 많다. 비가림 시설, 관수 시설이 아무리 잘 돼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보조 역할밖에 할 수 없음을 절감 할 때가 많다. 결정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은 결국 자연이다. 모쪼록 금년에는 축복처럼 탐스럽게 내린 함박눈만큼만 풍년이 들어, 삼천리 금수강산의 모든 농민들이 함박웃음을 짓는 한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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