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온 편지얼마나 더 상처 받고얼마나 더 아파해야 하나4∼5kg짜리 배추 2백포기면 1톤 화물차로 만차가 된다. 한 팔에 하나씩 두 포기 이상을 들 수가 없는 배추를 나는 밭에서 올려주고, 남편은 위에서 받아 쌓고, 밭고랑으로 차가 빠지면 트랙터로 끌고 나와 갖다 달라는 집에 또 다시 내려 쌓아주는, 출하하는 데만도 대여섯번 손이 가야하는 힘든 장사가 배추장사다.그런데도 한 포기에 오백원에도 못미치는 저렴한(?) 가격이 올해의 배추값이라고 한다. 생각 같아선 로터리로 한나절 휘휘 돌아다녔으면 좋겠는데, 정식시기에 잦은 비로 기계를 델 수 없어 삽으로 꼴을 따느라 고생한 게 아깝고, 자랄 시기엔 가뭄이 이어져 밤잠 못자고 양수기를 끼고 산 남편의 노고가 너무 커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니다, 싸다고 해서 농민이 농작물을 천대할 수는 더욱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아는 사람을 다 동원해 부탁해가며 직거래 방법을 택했다. 옆집에 들어놓는 물건을 보고 우리집에도 갖다 달라는 소리가 반가워 얼른 전화번호를 적어주면 “어머, 휴대폰도 다 있네요”하는 소리에 잠시 웃어본다. 거울도 안보는 여자라 했던가? 나는 거기에다도 비교 못할 꼴일 것이다.무, 배추밭에서 종일 나대니 옷에는 흙하고 채소얼룩하고, 머리는 분명 봉두난발일게다. 한 밤중에 전화가 왔다. 낮에 배추 1백포기를 갖다준 집이라고 한다. 그 주부 왈, 다른 사람은 김장을 못팔아서 난리들인데 당신은 나 같은 집에 편하게 팔았으니 덤을 더 놓고가야 하는데 왜 조금만 놓고 갔느냐 하는 게 전화를 건 요지였다.나는 싸든 말든 가꾸었으니 다 팔아야겠다는 나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확실히 깨달았다.소비자들은 싸면 더 싸게를 요구한다. 자기들 필요에 의해 구입해놓고 농민을 크게 구제하는 것처럼 과시하는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배추값이 싸다고 해서 생산농민들 마저 만만한 대상이 되어야 하는걸까?가뜩이나 천근무게로 내려앉은 양쪽 어깨의 통증으로 밤을 하얗게 밝혀본다. 돼지고기 한 근에 몇백원에 팔더라는 뉴스를 보았다. 내가 아는 사람은 산란계 농사 10년 짓더니 땅과 집, 계사까지 처분하고 갈곳이 없다고 한다. 충청도에 사는 지우는 정부에서 장려하는 신품종 벼를 심었더니 수매를 안 받아줘 톤백자루를 야적해놓고 쳐다보기도 지쳐 전화했노라며 웃었다.농민들이 얼마나 더 상처받고 자존심 상해야 유통다운 유통이 되려는지 우울할 뿐이다.TV를 켰다. 어느 공기업의 노조가 이마에 빨간 띠를 두르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들의 주장이 당연하다고 느낀다. 그 와중에 말 않고 살아온 농민 25년을 더듬어 본다. 월급이 없으니 퇴직금도 없다. 적립금도 없고 노후를 보장하는 근거가 아무 것도 없다.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기 앞서 현 농민들의 복지에 눈을 돌려주었으면 하는 게 비단 본인의 생각만이 아니고 전체농민의 바램이라는 것을. 바람이 차다. 초겨울의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 배추밭으로 향한다.값이 싸다고 구박할 수는 없다. 얼마나 예쁘게 자라준 배추인가. 적은 양을 주문해 승용차에 실어다 주면 “저런, 기름값도 못하겠네”하시던 60대 아주머니, 차가운 손을 잡아끌어 손도 녹일겸 점심 먹고가라고 간곡히 말하던 식당 주인 부부. 튀김을 사서 차에 넣어주던 첫거래의 아주머니들을 위해 이 배추는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내가 배추를 보호하는 것은 농민의 자리를 지키고자 함이다.이 길 숙경기도 안성시 공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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