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 월간지에 글을 한편 썼다. 그냥 농촌에서 어렵사리 살아가는 이야기였는데 여러 통의 낯선 이름이 적힌 편지가 왔다. 그런데 이 편지들의 공통점은 나와 같은 농민들이 썼다는 것과 울분과 배신감에 차 있다는 것과 어쩜 자신의 이야기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썼다고 밝혔다. 내가 쓴 이야기는 살아보니 참 아니다 싶은 농촌이라는 것과 빚보증 때문에 가압류가 붙어 있는 축사만 보면 살맛이 딱 없어진다는 것과 해도해도 살림이 펴지지 않는다는 것과 살아보지도 않은 내일이 힘들고 두렵다는 이야기였다. 직장을 떠나오던 무렵에 동료들과 술만 한잔 걸치면 목이 터져라 불렀던 ‘도시여 안녕’이라는 노래가 지긋지긋해졌고 그 노래를 부른 가수 조영남의 얼굴이 무척 미워졌다고 했고 누군가 ‘농촌이여 안녕’이라는 신곡을 발표한다면 남들이 지겨워하거나 말거나 줄창 그 노래만 부르고 싶다고도 했다.그런 이야기를 마감시간에 맞춰 보내놓고 나는 많이 후회했다. 어쨌든 잘못은 나한테 있는 것이고 내가 농업경영을 잘못해서 그런 것이고 냉철하게 대처하지 못한 탓으로 허둥대고 있는 것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런 이야기를 한 건 아닌가 해서였다. 그리고 책이 나왔을 때에도 차마 부끄러워서 얼른 펼치지 못했다. 그런데 속속 편지들이 왔다. 울산에서 경주에서 수원에서 진주에서 용인에서 안성에서…. 자신의 이야기와 너무 비슷한 내 이야기에 가슴이 끓어 연필을 쥐었노라며 융자금 이자에 원리금 갚으려면 또 빚을 내어야 하는데 연체가 걸려 빚은 내지도 못하고 상환재촉 통지서만 자꾸 쌓여가서 일할 맛도 안 나고 하루에도 열두번 야반도주를 생각한다고 했다. 맛난 음식, 좋은 옷, 고급 술, 분칠 짙은 계집질이나 하고 이런 상태면 차라리 억울하지나 않을텐데 젊은 청춘 다 받쳐 죽으라고 땅을 갈고 소똥만 쳤는데 결과가 이러니 울분만 치민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에 한결같이 말했다. 그래도 끝까지 농촌에 남아 살아보겠다고, 서글픈 현실을 징징 짜는 것 보단 주먹 쥐고 일어서는 길을 선택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밝은 날이 올지는 모르겠으나 그 날을 위해 어려운 농민이 다함께 어깨동무하고 서로가 위안이 되어 살아보자고 했다. 처음에 나는 한 두통 편지를 받았을 때만해도 아 이 월간지 발행 부수가 제법 되나 보다 했었다. 그런데 여러 통의 편지를 받으면서 아 이 나라에는 나와 같은 불리한 여건의 농민이 너무나 많구나 하는 것을 확연하게 느꼈다. 그래서 나는 잘 먹지도 못하는 소주를 들이키고 찬바람 들썽이는 축사에 쪼그리고 앉아 별을 보며 혼자 소리 죽여 흐느끼기도 했다.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시름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농민을 대신해서 울었다. 도대체 이런 암담한 농업인의 현실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정말 흙 속에 사는 우리들만의 잘못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융자금 제때 못 갚는다고 논밭뙈기며 축사에 붉은 가압류 딱지만 가혹하게 갖다 붙이는 농협과 파산을 나 몰라 하는 정부에게도 일말의 책임은 있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이렇게 일년농사 다 털어도 융자금 상환은커녕 빚을 더 내야만 살 수 있는 농업이라면, 더욱이 연체니 뭐니 악조건 때문에 빚조차 못내는 농민이 늘어난다면, 허구헛날 말뿐인 농업회생을 되풀이한다면, 21세기 화적떼가 생겨날지도 모르고 죽음을 불사하는 무정부 농민군이 일어설지도 모를 일이란 생각이 든다.강 양 주 / 경남 함양군 백전면 양백리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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