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쯤 벌어지는 입시전쟁을 보면 묘한 심경에 빠지곤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둘러싼 학생과 그 학부모들의 갖은 노력에서 25~26년 전 거쳤던 예비고사(학력고사)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큰 아이가 수능을 보는 수험생이어서 그 전쟁의 한 복판에 서 있던 입장이었다. 입시의 추억, 우리 세대에 있어 그것은 성장기의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자락이면서도 또 한편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거쳐 와야 했던 회색의 기억 중 하나다.

늘 그랬지만, 이번 2011 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두고서도 말들이 많다. 정부 호언대로  사교육비를 절감하기 위해 EBS와 연계한 문제가 전체 중 70%를 넘었다지만, 수험생들 체감 난이도는 되레 높아진 것이다. 이러다가 EBS 교재를 중심으로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난이도 조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의 본령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지식과 기술 등을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주는 일’ 그것이 교육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에다, 고등학생의 84%가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교육은 대중교육이자 보편교육이 되어 있는 사회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조차 입만 열면 한국의 교육열을 배우자고 부르짖을 정도이다.

허나 실상은 어떠한가? 대학교육까지의 허리 휘는 교육비용을 온전히 개인이 부담하는 나라이고, 천문학적인 등록금을 내지 못해 자살하고 파산하는 대학생들이 생기는가 하면, 그 대학을 가기도 전에 입시경쟁으로 시들어 가는 청소년들이 있다.

무엇보다 수능 성적이 갈 수 있는 대학을 결정하고, 대학의 서열이 직업과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세상이다. 수능 성적의 결정적인 요소는 부모가 입시 사교육비를 얼마나 쓸 수 있느냐에 있다. 입시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했다는 입학사정관제도 도입하자마자 사교육의 굿판이 된 지 오래다. 이제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영수 몰입 교육, 특목고 확대, 자사고 확대, 대학의 시장화 등 특권층을 위한 대입제도, 대학서열화를 더욱 부추기는 방안만 쏟아내고 있다. 이런 폐단은 경쟁지상주의, 시장지상주의의 기조가 계속되는 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수능 변별력 정도의 정책수단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지난 정부에서도 끊임없이 추진돼 왔고, 특히 현 정부에서 심화되는 경쟁교육, 특권교육을 중단해야 한다.

뭐를 해도 망가지는 교육정책을 보면 농업정책과 닮은꼴이다. 거기엔 경쟁지상주의의 철학이 똬리를 틀고 있다. 농기업과 규모화 된 주업농에 정책지원을 집중하고 민간투자 활성화를 명분으로 하는 외부자본의 농업 진입 정책이 그것이다. 협상 실패를 농민에게 전가하는 쌀 조기관세화 시도, 휴대폰과 자동차를 위해 농업을 희생시키는 FTA 추진, 배추 값 파동에 무차별 수입으로 대응하는 정책, 농협을 경제사업 잘하는 농민의 조직으로 만들라고 했더니 금융지주회사 중심의 조직으로 바꾸려는 정책이 그것이다.

어떻게든 농업을 시장에 맡겨보려는 시도들을 보면 우리나라 교육정책이 왜 이 모양인지, 왜 농정에 농업은 있고, 농민은 빠져 있는지 보이는 것 같다. 닮았다. 잘 나가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정책이나 잘하는 농기업이 농업을 맡아야 한다는 농정이나. /편집부 부국장.

이상길leesg@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