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들 가정폭력 '위험수위' 농촌여성 인권 어디로 갔나농촌의 들녘은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손길로 분주하다. 가을걷이는 농촌여성들에게 수확의 기쁨이전에 과중한 노동을 안겨준다.그러나 농촌의 여성들이 감당해야 할 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농사일에, 가사일에 파김치가 되어버린 몸에 부부싸움이라는 이름으로 남편에 의해 휘둘러지는 일상적인 폭력까지 더해지는 여성의 경우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농어촌 여성들의 인권복지를 위해 올해 5월에 문을 연 영광여성의 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에는 그동안 멍들고 골병든 지역 여성들의 발걸음이 늘고 있다. 농어촌지역의 가정폭력상담은 몇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폭력이 일상적이고 장기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북어와 여자는 사흘걸이로 패야 맛’이라는 둥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 ‘집안 창피하게’라는 남성중심주의와 혈연중심의 전통가족주의가 팽배한 농촌지역정서에서 매맞는 아내들은 냉가슴과 육체적 고통을 호소한다. 상담소를 찾는 농어촌 여성들 또한 맞고 사는 걸 일상으로 알고 결혼초부터 20∼30년이 넘는 매타작을 견디다 못해 마지막으로 하소연할 곳을 찾는 경우가 허다하다. 둘째, 가정폭력은 한 가정에만 머무르지 않고 농촌공동체를 해치는 방향으로 가기 쉽다. 아내, 자녀에 대한 폭력에 머무르지 않고 부모, 더 나아가 혈연관계로 구성된 마을의 사람들과의 싸움도 잦게 일어나는 등 마을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기 십상이다. 그래서 한가정의 폭력사실이 소문은 짜하게 나지만 마을사람들은 부부싸움에 개입하길 극도로 꺼린다.셋째, 폭력가정의 문제는 부부 둘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자녀에게 직접적으로 폭력을 쓰든 안쓰든 아이들에게는 이미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폭력에 익숙해져 일탈의 길을 걷게 된다. 농어촌 청소년들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반복된 폭력 앞에 아이들은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세상이 말세다’라며 아이들만 잡을 일이 아니다. 과연 우리집안은 평화롭고 민주적인가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매맞는 농촌여성에게 가장 큰 문제점은 어디에고 호소할 곳이 없다는 점이다. 동네 창피하고 좁은 지역사회에서 남편의 위신을 생각해서 벙어리 냉가슴 앓다보면 어느덧 아이들도 빠져나가고 휑한 바람부는 몸은 욱신거리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우울증에 걸리기도 쉽다. 농촌여성에 대한 상담사업이 절실한 대목이다. 아직 지역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무에게도 도움 청할 수 없는 여성들이 알음알음으로 멍든 얼굴과 몸을 이끌고 상담실로 들어올 때면 그녀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익숙하지 않은 전화상담보다는 얼굴보고 털어놓는 그녀들의 속내를 알면 알수록 곪아가는 농어촌 여성들의 찌들은 안타까운 삶에 마주 할 수 있다. 황금들녘의 풍성함과 평화만큼이나 농촌여성들의 삶과 가정에도 평화로움이 깃들날이 언제일지 아득하다.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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