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따기도 2년차 초보농부의 행복한 작업이다.

2월 하순이면, 한해 농사의 시작이자 우리 농원의 주 작목이며 주 수입원인 고추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우리 가족과 고추와의 만남은 이때부터 9개월 동안 지속된다.

친환경 농사를 하고 있는 터라 농약과 화학비료 대신 자가 액비와 미생물을 발효시켜 일주일이 멀다하고 고추에 양분을 준다. 사람들 먹기도 귀한 효소를 부지런히 담아 놓았더니 고추가 먼저 시식을 한다.

고추에 물을 주거나 영양제를 줄 때 분무기 줄을 잡아주면 두어 시간 남짓이면 끝난다. 잡아주지 않으면 4~5시간이나 걸리는 작업이다. 그 일은 주로 내 담당이었는데 지금은 10살 먹은 큰 아들이 대신해준다. 스스로 엄마, 아빠의 일을 도와주며 기뻐하는 아들의 모습이 고맙고 대견하다.

9월이면 붉은 고추를 따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은 한 사람이 한 골씩 책임지지만 우리 부부는 한 골을 서로 마주보고 딴다. 솔직히 일은 좀 더디게 된다. 하지만 “내가 좀 더 수고하면 상대가 편해지겠지”하는 배려심이 생긴다. 또 자식 이야기, 마을의 크고 작은 일, 지인 근황 등 주위에 일어나는 일을 참견하며 흉도 보고... 붉은 고추처럼 우리의 수다도 익어간다. 일은 좀 더디게 되지만 상대를 배려할 수 있고 서로의 대화가 깊어질 수 있어 이 방법을 권장해주고 싶다.

따온 고추는 태양에 3일간 숙성한 후 세척해서 건조기에 84시간을 넣는다. 이후 태양에 7일을 말려 빻은 후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은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보낸다. 고추를 갖고 가는 사람들과 내가 농산물을 사고 파는 관계가 아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술 좋아하는 남편은 김소월님의 시, ‘님과 벗’의 마지막 구절을 변형시켜 “고추에 붉은 열매. 그대여 부으라. 나는 마시리”라고 흥얼거린다. 일을 잘 마무리하고 와서 뿌듯한가 보다.

우리 집 고추는 아직 붉은 채로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가보다. 내일은 또 무슨 얘기를 들려줄까. 탐스런 고추, 예쁜 공주님 같이 귀여운 고추, 병없이 잘 자라서 고마운 고추, 우리 가족을 잘 지켜주는 고추. 고추를 재배하면서 느끼는 2년차 초보 농부의 행복이다.

/김혜숙 씨는 수원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지난 2009년 9월 경북 봉화로 남편 최만억 씨와 함께 귀농한 2년차 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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