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것이 어느새 13년. 첫 두 해는 고추와 두릅, 호박과 고구마 농사를 지으면서 호된 시행착오를 겪었다. 3년째 되던 해, 남편이 벼농사를 짓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쌀농사가 올해로 10년째이다.

그 동안 시골에 살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 무어냐고 묻는 이들에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생전 처음으로 벼를 베던 것이라고 말한다. 어찌 그날을 잊을 수 있겠는가. 나도 모르게 “아이구, 내 새끼!” 하며 우리 벼를 가슴에 부둥켜 안았던 것을. 감격에 겨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것을.

3년 전에 해발 750미터의 산골에 들어와 우리는 다시 다랑논을 만들었다. 소출은 보잘것없었지만 우리 쌀로 지은 밥은 매끼 감동이었다. 올 봄, 우리는 손모를 세 번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논에 나타나는 고라니들 때문이었다. 논은 지금도 앞니 빠진 개구쟁이 형상이다. 일조량도 부족해 벼농사를 놓고 우리는 고민에 빠져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걱정스런 기사를 읽었다. 지난해 우리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74kg으로 다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단다. 1984년의 130kg에서 줄곧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농촌 사람들이 밥을 많이 먹어 그 정도가 된 거란다. 라면, 빵, 국수 같은 인스턴트와 대체식품에다 고기, 생선, 과일, 어패류에 이르기까지 먹을거리가 풍부해진 것이 원인이라 한다. 얼짱에 이어 몸짱이란 신조어가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 열풍에 빠진 것도 한몫 했으리라.

나도 예전에는 밥을 거의 짓지 않았다. 직장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아침은 거르고 점심과 저녁은 거의 밖에서 먹었다. 어쩌다 밥을 지을 때도 그 쌀이 어떻게 내 손에 오게 되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서,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살 수 있는 거였다. 내 손으로 논에 모를 심고, 잡초를 뽑고, 벼를 거두고 나서야 나는 쌀이 단순한 상품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쌀은 생명이었다.

우리는 쌀이 남아돈다고 난리이지만, 이 세상에는 8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금도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북한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쌀밥 한 공기의 값이, 쌀만 계산하면 200원이란다. 껌 한 통도 안 되는 값이다. 생명 한 공기에 200원! 이제부터 끼니마다 생명 한 공기씩 배에 채우면 어떨까.

>>앙성댁 강분석(52)씨는 1997년 봄 서울에서 충북 충주시 앙성면으로 귀농, 지금은 경북 봉화로 이사해 귀농 13년차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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