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도마에 오르는 과제다. 

보통 세계의 협동조합은 기능에 따라 품목별, 지역별 조합이 있고, 상향식으로 조직된 연합체가 전국단위에 존재한다. 일본의 경우 교육 지도사업을 하는 전국농협중앙회(전중)가 있고, 경제사업 조직으로 전국농협연합회(전농)가, 신용사업은 농림중금이 맡고 있다.

서구의 협동조합은 경제사업을 담당하는 농협과 신용사업을 담당하는 농협은행으로 분리돼 있다. 경제사업을 하는 대표적인 조합으로는 미국의 썬키스트, 네덜란드의 그리너리 등을 들 수 있다. 농협은행 조직으로 유명한 것은 프랑스 크레디아그리콜, 네덜란드의 라보뱅크 등이 있다.

하나의 중앙회가 은행, 공제, 상호금융연합, 경제사업을 겸영하고 여기에 지도, 교육, 감독, 농정활동 모두를 차지하고 있는 협동조합은 우리나라의 농협중앙회가 유일하다. 그러니 한국의 농협중앙회는 비대한 몸집, 조합위에 군림하는 문제, 신용사업 위주의 돈 장사에 치중해 농민조합원과 일선조합의 자주적 결사체 역할은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이다.

농협중앙회 신경분리 문제는 역대 정권이 시도했지만, 농협의 반대, 정부의 미온적 태도, 농민단체간의 분열로 인해 지금껏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도 농협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그 내용이 연합회식이 아니라 지주회사 방식의 신경분리를 지향하는 내용이어서 논란은 계속된다.

특히 농협중앙회는 개혁시기마다 신경분리시 자본금이 부족하다며 전제조건으로 천문학적인 필요 자본금을 제시해 개혁 논의를 복잡하게 하고 있다. 농협의 자본금은 2009년 기준 12조원인데, 향후 교육지원부문에서 5조원, 경제부문에서 6조6000억원, 신용부문에서 14조9000억원 등 모두 26조5000억원이 필요하다며 14조5000억원의 자본금을 채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협측은 14조5000억원의 부족자본금 중 8조5000억원은 이익잉여금이나 자산재평가를 통해 적립하고, 나머지 6조원은 정부가 지원해 달라는 입장이다. 

농협중앙회의 자본금 부족 논리는 처음이 아니다. 2002년 금융연구원 보고서는 2000년말 현재 약 2조원의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고 했었지만, 농협중앙회는 2003년 6월에는 추가자본금을 3조6119억원으로 계산했다가 2004년 7월에는 7조8759억원까지 늘려 제시한 바 있다. 10년 동안 부족자본금이 14조원으로 두 배 증가한 것이다. 

개혁 때마다 도깨비 방망이 같이 튀어나온 자본금 부족 논리는 논의의 초점을 흐리면서 신경분리를 한정 없이 미루는 빌미를 제공해 왔다. 게다가 정부와 농협이 지주회사 방식을 선호하는 가운데 농민운동 진영 내부에서 지주회사 방식과 연합회 방식간 논쟁이 복잡하게 얽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분명한 것은 농협중앙회가 신경분리를 미루는 동안 이런 저런 사업규모를 늘려갈수록 필요자본금은 늘어나게 된다는 점이다. 그동안 신용사업 부문의 잇따른 종합금융그룹화 추진, 최근 로젠택배 인수설 등을 보면서 앞으로도 농협의 필요자본금은 계속 늘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신경분리를 한다고 14조원의 자본금이 부족한 농협이라면 그동안 그만큼의 부실상태에서 경영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닐 터. 오래된 궁금증은 증폭되기만 한다. /편집부장.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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