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도, 객도 없이 함께 나눈 꿀맛

귀농 3년째인 2000년 여름에 우리는 당시 살던 곳의 이름을 딴 앙성닷컴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었다. 컴퓨터가 아직 낯선 데다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된 서울과 달리 시골에서는 전화 모뎀으로 접속해야 했기에 인터넷 자체가 쉽지 않던 때였다. 서울의 지인들은 세상과 멀어지지 않으려면 인터넷을 해야 한다고 성화를 댔지만 나는 세상에서 멀어지려고 시골에 내려온 건데,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던 내가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인터넷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날마다 만나지는 자연의 경이와 고마움 그리고 농사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지난 날의 나같이 농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도시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사명감 비슷한 것이 생겼던 것이다. 준비 없이 내려온 시골에서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와 실패를 귀농을 생각하는 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또한 인터넷 직거래도 염두에 두었다. 

후배의 도움으로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는 이후 내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나는 바쁜 철에도 거르지 않고 농사와 시골 일기를 올렸다. 기쁜 일에는 자신의 일처럼 박수를 쳐주시고 슬픈 일이면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주시는 수많은 얼굴 모를 분들이 내게 큰 힘이 되었다. 그이들의 따스한 댓글을 읽으며 나는 그이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다고 믿었다.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홈페이지를 끌어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이들 덕분이다.

지난 주말에 우리는 홈페이지 개설 10주년을 맞는 조촐한 모임을 가졌다. 전국에서 24 가족, 56 분이 산골을 찾아오셨다. 허공의 집에서 이루어진 소통과 나눔이 땅 위에서도 이어졌다. 우리는 주인과 객의 구별 없이 모두 함께 모임을 만들어갔다. 밥 짓기도 그러했다. 장작 패고 불 피우는 것부터 뜸 들이고 상 차리는 것까지, 산골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손발을 척척 맞추었다. 둘째 날 점심 메뉴는 겨울을 난 우거지 된장국에 쌈채 비빔밥이었다. 앙성 시절부터 우리를 아껴주시던 쌈채 농장에서 갖가지 유기농 채소를 푸짐하게 보내주셨던 것이다. 개울 건너 큰밭에 팥 심고 메주콩 모종 옮겨 심느라 땀을 흘린 뒤여서 쌈채 비빔밥은 더욱 빛이 났다. 찬도 없고 상도 없었지만 모두들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들일 후에 먹는 비빔밥은 그토록 꿀맛이었다.

>>앙성댁 강분석(52)씨는  1997년 봄 서울에서 충북 충주시 앙성면으로 귀농, 지금은 경북 봉화로 이사해  귀농 13년차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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