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성댁의 건강밥상

서울에서 살던 때는 직장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아침은 거르고 점심과 저녁은 거의 외식으로 해결했다. 먹는 것을 좋아하긴 했으나 요리에는 관심도 취미도 없었다. 처음 시골에 내려와서 제일 어려웠던 것 중의 하나가 음식 만드는 일이었다. 하루 세 끼를 내 손으로 지으려니 그런 고역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시골생활 13년에 내 손으로 지은 쌀과 콩, 고추로 밥은 물론 된장에 고추장까지 담그게 되었으니 친정어머니가 계셨다면 한 말씀 하셨을 것이다.

“미꾸라지 용 됐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잘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김밥 말기. 김밥에 일가견이 있는 조카에게 요령을 배웠는데도 내가 만 김밥은 찌그러져 있거나 어딘가 허술했다. 그리하여 조카는 우리집에 내려올 때마다 작은 동산만큼 김밥을 말아야 했다. 남편도 나도 김밥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이다. 김밥은 내게 아킬레스 건이었다. 그런데 방법이 생겨났다.

2006년 겨울, 히말라야 피상피크 등반에서였다. 산 속에서 보름 넘게 푸른 채소를 구경하지 못하다가 하산길에 마낭에서 하루를 머문 때였다. 롯지의 메뉴에 오픈 샌드위치가 있었다. 큰 마을이기는 했지만, 3500미터가 넘는 곳에서 먹은 오픈 샌드위치는 감동이었다. 식빵 위에 야크 치즈니 햄과 함께 푸짐하게 올라있는 이름 모를 채소를 정신 없이 먹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아, 김밥도 이렇게 만들면 되겠네.’

그렇게 해서 앙성댁표 오픈 김밥이 생겨났다. 준비 과정이 복잡한 일반 김밥과 달리 오픈 김밥은 간편하기 그지 없다. 밥만 있으면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있는 대로 꺼내 6등분이나 8등분으로 자른 김의 길이에 맞추어 잘라 놓기만 하면 된다. 오픈 김밥의 최대 미덕은 ‘골라 먹는 자유’이다.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마음대로 재료를 골라서 김에 싸면 되는 것이다.  오픈 김밥은 우퍼들이 특히 좋아한다. 말레이시아 친구 자리나는 오픈 김밥을 내놓던 날, 집에 돌아가서도 김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며 박수를 쳤다.

그런데 정작 남편은 오픈 김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눈치이다. 김밥 하면 으레 연상되는 소풍날의 김밥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꽁지를 먹으려고 새벽부터 김밥을 준비하는 엄마 주위를 얼쩡거리던 기억과 그것과 함께 떠오르는 사이다와 실에 꿴 삶은 밤이 그리운 것이리라.

>> 앙석댁 강분석(52)씨는 1997년 봄 서울에서 충부 충주시 앙성면으로 귀농, 지금은 경북 봉화로 이사해 귀농 13년차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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