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성댁의 건강밥상

그제와 어제 단비가 내렸다. 개울 건너 큰밭에 고추모를 시집 보내놓고는 가뭄에 뿌리가 잘 내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하우스 짓고 고추 모종 옮겨 심느라 몸살이 난 우리에게도 비는 모처럼의 휴식 시간을 안겨주었다. 해가 간간히 나던 어제 오후에는 그래도 마음이 급해 취도 솎아 데치고 정원석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부추를 베었다. 하우스에 씨를 뿌려 키운 부추를 정원석 틈새로 옮겨심은 것이 지난해 봄, 밖에서 겨울을 한 번 난 부추가 제법 자리를 잡았다. 며칠 전 마을 사람들이 오던 날에 부추전을 한바탕 부쳤는데도 김치거리가 제법 넉넉했다.

13년 전 시골에 내려와 처음 맞은 봄에 내가 지은 첫 농사가 정원석 틈새마다 부추씨를 뿌린 거였다. 남편도 나도 부추를 무척 좋아했거니와 이웃집 뜰에서 본 부추가 자태도 곱고 기품도 있었던 것이다. 잘한 일이었다. 늘씬하니 푸른 잎을 보기도 하고 먹기도 하려고 심은 부추가 뜻밖에 꽃도 예뻤던 것이다. 길게 올라온 꽃대에 아기별 같은 하얀 꽃들이 동그랗게 모여난 모습을 처음 보았던 날은 그게 정말 부추꽃이 맞나 여러 번 확인했다.

그리하여 우리집 상에는 부추가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부추김치가 상에 오른다. 앞밭에서 딴 오이에 부추를 버무려 넣고 오이 소박이를 담그는 날이면 스스로 대견한 마음에 바보같이 입이 벌어지곤 한다. 비가 오거나 때 없이 출출할 날에는 부추 부침개가 제격이다. 어쩌다 큰 마음 내어 만두를 빚는 날이면 부추는 만두의 격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그럴 듯하게 기분을 내고 싶은 날이면 스크램블드애그처럼 달걀을 휘저은 다음 썩썩 부추를 썰어 넣고 슬쩍 익히면 맛도 향도 멋도 그만이다. 그뿐인가, 어쩐 일인지 파 농사가 제대로 안 되는 우리집에서 부추는 일상의 양념으로 쓰인다. 기왕이면 예쁜 꽃을 심지, 했던 마을 아낙들도 파가 떨어지면 우리집으로 달려왔다.

부추는 또 얼마나 신통한지 베고 돌아서면 어느새 자라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실컷 먹여주고 아름다운 꽃구경까지 시켜주니, 기특하기 짝이 없다. 그것도 부족해서 그냥 내버려두어도 혼자서 겨울을 난 후 봄이 되면 어김없이 돌 틈에서 파랗게 올라와 칼날 같은 생명력을 뽐내니 부추는 참 아름다운 녀석이다. 그런데, 그대 아시는가? 부추가 백합과라는 것.

>> 앙석댁 강분석(52)씨는 1997년 봄 서울에서 충부 충주시 앙성면으로 귀농, 지금은 경북 봉화로 이사해 귀농 13년차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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