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전국사회부장
역대 최고의 성적을 낸 이들의 활약은 유례없는 경제난으로 즐거움이 별로 없는 국민들에게 한줄기 희망이었음에 틀림없다. ‘세계 5위’라는 성적은 국민적 자긍심을 한껏 높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온 국민의 눈길이 개선하는 밴쿠버 올림픽 스타들에게 쏠렸던 2일, 충남 태안에서 삼성에 의한 기름유출사고 피해배상을 요구하다 목숨을 끊은 한 어민의 장례식이 열렸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도한 언론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태안군민 3000여명은 이날 장례식에서 그동안 태안 주민을 위해 앞장서 싸워오다 지난달 26일 목숨을 끊은 고 성정대 태안기름유출사고대책위원장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했다. 2007년 12월 삼성중공업 소속 크레인 운반선이 홍콩선적 유조선 허베이스트리트와 충돌해 일어난 대규모 기름유출사고 이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살아보겠다고 2년 이상 힘겹게 버텨왔던 태안 주민 또 한 사람이 세상을 등진 것이다.
태안 주민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안타까운 일은 네 번째다. 지난 2008년 1월10일에는 굴 양식장을 경영하던 어민이, 1월15일에는 바지락을 캐서 생계를 꾸려가던 노인이 자살했다. 이어 1월18일에 태안에서 횟집을 하던 주민이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자살한 비극도 생생하다. 국민들의 이목이 올림픽에 쏠려있는 사이, 태안에서는 왜 또 다시 어민이 죽어가야 했는가?
삼성에 의한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났지만, 태안 주민들은 말 그대로 보상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생계 압박을 받아왔다. 피해주민들의 국제기금에 대한 배상청구는 지난달에야 완료됐고, 정부가 허울 좋게 마련한 특별법도 국제기금에 보상청구를 완료한 시점 이후에 적용되므로 그 이전에는 대부금도 대지급금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국제기금측에 보상청구를 완료해도 대상이 제한적이고 절차도 복잡해 보상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특히 피해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맨손어업 등 수산분야(양식 제외)는 국제기금으로부터 한 푼의 보상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또 최근 국제기금이 무허가, 무면허 어민들에 대해 무보상 원칙을 정해 앞으로 보상과정에서도 갈등이 예고된다.
피해 주민들은 절규하고 있지만, 위정자들은 동계올림픽 성적 찬양에만 열을 올리고, 국민들의 관심은 TV와 스포츠에 쏠리고 있다. 기름유출 사고에 직면해 피해대책위원장으로 외롭게 태안주민을 지켜온 그의 죽음은 책임 회피로 일관하는 삼성, 무대책한 정부, 무관심한 국민들에게 보내는 경종을 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건희 전 삼성회장이 3일, 선수단의이 청와대 만찬에 앞서 대통령과 환담을 나누는 장면은 보는 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는 여기서 “우리나라가 복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한다. 배임과 조세 포탈로 유죄판결을 받은 그가 단독특별사면으로 올림픽 영웅들 속에 서 있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기름유출 사고를 일으킨 삼성은 사고 50일만에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책임 회피로 일관했고, 배상과 관련해 주민들이 주장하는 피해규모가 수조원대에 이르는데도 겨우 56억원만 배상하면 되도록 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이것이 ‘복 많은 나라’의 현주소다.
이상길leesg@agrinet.co.kr
이상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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