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전국사회부장

게리멘더링(gerrymandering)이란 말이 있다.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1812년 미국 메사추세츠 주지사였던 엘브리지 게리(E. Gerry)가 자기 당인 공화당이 상원의원 선거에서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정한데서 유래됐다. 멋대로 그린 선거구의 부자연스러운 형태가 샐러맨더(salamander, 불속에 산다는 그리스 신화의 불도마뱀)와 비슷해서 붙여진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게리멘더링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유신 시절이던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가 대표적이다. 당시 정권은 국회의원 1/3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1선거구에서 2인씩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로 전국을 73개 선거구로 나눴다. 국회의원 정수는 선거구 선출 146명, 의원정수의 1/3인 통일주체국민회의 선출 73명 등 총 219명으로 했다. 유신정권은 당시 여촌야도라는 전통적인 선거 지형 상 승리가 어렵다고 판단, 도시선거구를 45개에서 17개로 줄이고, 농촌선거구를 도시선거구와 통합시키는 게리멘더링 선거구를 만들어 선거를 치렀다. 결과는 당연히 집권당의 승리였다.

지금은 2010년이다. 유신독재 시절이 아니다. 여촌야도의 투표 경향도 흐려졌다. 그러므로 이런 식의 노골적인 게리멘더링을 하기엔 쉽지 않다. 게리멘더링을 방지하기 위해 선거구는 국회의 의결을 거쳐 법률로 정하도록 되어있으며, 이러한 원칙을 선거구법정주의라 한다. 이에 따라 이번 6.2 지방선거를 앞둔 선거구 조정 작업은 형식상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만들어 국회가 개정한 공직선거법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이뤄진 공직선거법 논의는 유력정당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광역의원수를 도시에서 늘리고 농어촌에서 줄이는 내용으로 선거구가 조정됐다. 농어촌지역 35개 선거구에서는 선거구가 2개에서 1개로 줄었고, 대도시 42개 지역은 오히려 늘었다. 이에 맞춰 각 시도의회에서도 기초의원 선거구 조정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면 지역 선거구를 도시의 동 지역과 묶어 버리는 방식으로 결과를 내고 있다. 이런 행태는 도시지역의 형편에 농어촌을 억지로 맞추려는 새로운 형태의 게리멘더링에 다름 아니다.

역대 정권이 도시 중심의 발전 정책으로 농어촌을 소외시켜 농어촌 인구를 줄이더니, 이번에는 인구가 적다고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마저 줄여버리는 방식으로 또 다시 농어촌을 무시하고 있다. 아무리 선거에서 인구비례가 중요하다 하지만, 지역대표성 역시 중요한 기준이다.

지방의원 선출을 단지 인구 편차만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지역대표성을 무너뜨리고, 인구의 대도시 집중만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수도권과 대도시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가 집중되는 실정에서 농촌지역의 지방의원마저 줄이는 것은 농어촌 소외의 악순환을 심화시킬 것이다.   

우리 헌법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있다. 인구가 적은 지역에 산다고, 도시가 아닌 농어촌에 산다고 참정권을 불리하게 행사해야 한다면 어떤 형태의 차별도 금지하는 헌법의 기본정신에 배치된다. 입으로만 아니라 진실로 농어촌을 걱정하고 국민 모두를 생각하는 정치권이라면 지금이라도 농어촌 소외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선거구를 재조정해야 한다.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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