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성댁의 건강밥상

단풍이 고울 무렵 산골을 찾아와 고추 따고 기장 거두었던 말레이시아 처자 자리나가 얼마 전 우리 농장을 다시 다녀갔다. 종일토록 콩이며 팥을 고르던 때였는데, 재잘재잘 수다 떨기 좋아하는 자리나 덕분에 지루할 새가 없었다. 가족과 친구에서 음악, 종교, 직업에 이르기까지 자리나는 이야깃거리도 많았다. 먹는 이야기도 물론 빠지지 않았다. 그 동안 내 음식을 그리워했다는 자리나의 아부성 발언에 신이 나서 쑥개떡 송편도 빚고 팥빙수도 만들고 번거로운 수제비도 끓였다. 오랜만에 먹는 팥빙수는 남편이 더 반겼다.

생전 처음 겨울을 맞는 자리나에게 제일 힘든 것은 추위와 음식일 터. 추위야 옷을 껴입으면 된다지만, 먹는 것에 관해 금기가 많은 이슬람교도이니 먹고 싶은 것이 오죽 많겠는가. 돼지고기는 금기이고 쇠고기와 닭고기도 이슬람교 방식으로 도축된 것만 먹을 수 있단다. 대도시에는 무슬림 전문 식당이 더러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유기농 농장에서 지낸 자리나는 본의 아닌 채식주의자가 된 셈이다. 그래도 한국 음식이 어찌나 맛있는지 몸무게가 3킬로그램이나 늘어 걱정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떠나기 전날, 분식집을 지날 때면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만두가 먹고 싶었다는 자리나를 위해 만두를 만들었다. 지난해 담근 묵은지와 우리가 지은 콩으로 만든 두부로 속을 준비했다. 참기름 대신 들기름을 쳐서 깊은 맛을 내고 자리나가 좋아하는 매콤한 맛을 더하기 위해 청양 고춧가루를 조금 넣었다. 이제껏 먹은 만두 중에 최고라며 자리나는 박수를 쳤다. 나는 자리나에게 어머니의 만두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렸을 적 설날이면 친정 어머니는 곱게 간 돼지고기에 데친 숙주나물과 으깬 두부를 버무려 속을 만드셨다. 익지 않은 속도 맛있어서, 오빠들은 만두를 빚기도 전에 손가락으로 속을 집어먹곤 했다. 어머니의 만두피는 여름 적삼처럼 얇고 하늘하늘했다. 그렇게 빚은 만두를 끓는 물에 익혀 물만두처럼 초간장에 찍어먹었는데, 오빠들은 한 번에 스무 개 이상을 먹었다.

시댁에서 처음 먹은 만두는 사뭇 달랐다. 시어머니는 만두에 김치와 두부 그리고 당면을 넣으셨다. 만두피도 두툼했고, 익히는 것도 떡 찌듯이 시루에 찌셨다. 시어머니의 김치만두는 든든하고 칼칼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나는 내 식대로 만두를 빚는다. 자리나는 내가 만든 만두가 맛나다고 했지만, 나는 두 분 어머니의 만두가 그립다.

양성댁 강분석
앙성댁 강분석(52)씨는 1997년 봄 서울에서 충북 충주시 양성면으로 귀농, 지금은 경북 봉화로 이사해 귀농 12년차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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