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나의 행복한 시골살이

털신은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는데 큰 도움을 준다.

가을인가 싶더니 벌써 겨울이 왔고, 요 며칠 겁나게 춥더니 아침마다 물안개가 몽골몽골 올라가던 저수지에 살얼음이 얼었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지만 문밖만 나오면 바로 한데라 꼼짝도 못하고 구들방에 옹기종기 모여 산다. 아예 아들 방에서 얹혀사는 셈인데 텃세가 좀 심해도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내년까지만 집에 있고 후년이면 괴산읍내 고등학교로 들어간다. 차편이 불편해서 기숙사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찍 분가(?)를 하는 샘이다. 그러면 아이들 다 내보내고 또 단둘이 남아서 서로 의지하고 지지고 볶고 살아가겠지.

밭에서 일할 때도 좋고
불 때러 나갈 때도 좋고
마을회관 마실갈 때도 좋고
해마다 사게 되는 필수품

“언제쯤이면 작은아이가 내 치맛자락을 놓아줄 수 있을까”하며 학수고대하던 때가 있었다. 참 이렇게 빨리 떠나가는 것을, 그때가 제일 좋은 시절이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실 때 콧방귀도 안 뀌었던 철부지 엄마였다. 이제 와서 달라붙어 살라하니 아이가 시큰둥이다. 밤늦도록 음악 듣고 싶은데 빨리 자라고 하니 아이는 우리가 불청객이다. 그래도 살 부비며 그놈의 투정이 밉지만은 않으니 세월은 또 우리를 중년의 시절로 데려다 놓은 것이다.  

어제는 음성에 가서 아이 문제집 사고 신발가게 가서 털신 두 켤레를 사가지고 왔다. 해마다 사게 되는 필수품이다. 지금부터 신어서 내년 여름이 올 때까지 신는다. 봄판에 밭에서 일할 때도 그만이고 겨울에 불 때러 나갈 때도 좋고, 마을회관에 마실 나갈 때도 딱 좋다.

처음 시골에 내려와서는 털신 마니아였다. 서울에 계신 엄마한테도 선물하고, 난방이 안 되던 욕실에도 하나 사다놓고 외출용으로 두 켤레사고, 귀농한 친구 집에 놀러갈 때도 선물로 사가지고 갔다. 한번은 서울 친정집에 신고 갔는데 조카들이 웃어죽겠단다. 하긴 서울 아파트 현관에 벗어놓은 털신이 좀 튀는 패션이긴 했지만. 그래도 작년에 신던 털신이 낡아서 깔창도 하나 얻어오느라 단골집 얘기를 들먹이며 하나 덤으로 얻어왔다. 깔창만 갈아 끼우면 따뜻하고 폭신해서 창고를 드나들 때 신으면 그만이다.

신발 사가지고 들어왔더니 아랫마을 규웅씨가 물 받으러 와서 벌써 한잔 나누고 있다. 마누라 없어도 김장김치에 아버님 제사지내고 남은 부침개를 프라이팬에 데워서 안주로 하고 있다. 아랫마을 이야기, 박달마을 이야기, 마을을 다 돌며(?) 소식을 나누다보니 규웅씨 집에서 전화가 온다. 물 뜨러 가서 함흥차사가 되었으니 저녁 상 봐놓고 기다리던 마누라 지청구를 들어도 싸다. “하하하 샘을 파느라고.”

도시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지만 요즘은 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일도 제법 수준급이다. 설거지는 누구보다도 깔끔하게 잘하는데 그릇 종류별로 줄맞춰 세워놓고 행주 빨아서 탁탁 털어서 말려놓는다. “나는 당신이 하는 설거지가 젤 맘에 들어.” 과일 깎던 손을 놓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칭찬을 해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고 했던가? 물 한 방울 부엌 근처에도 안 오던 경상도 귀남이 신랑을 이렇게 달인으로 만든 데는 부단한 내 노력이 있었다. 마음에 안 들어도 끝까지 참아주는 일. 쉽지 않지만 고도의 트레이닝으로 지금은 누가 뭐래도 선수다.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쌀 씻어 밥 앉히고 아궁이에 불 지피는 일은 이제 공동의 일이 되었다. 남자일 여자일이 따로 없고 내 일도 네 일이고 네 일도 내일인거다. 그래야만 시골살이가 돌아간다.

유안나 씨는 2002년 귀농해 현재 충북 괴산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으며, 천연염색 천을 바느질 해 조각보로 만드는 것을 즐긴다. [시골에 사는 즐거움] 책의 저자이며, 2003~2006년까지 문화일보 ‘푸른광장’의 고정 필자로 활동했다.



충북 괴산/ annarew@han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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