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전국사회부장

여러 사람이 있다. 그들 모두에게 생각은 자유다. 기본권이다. 그러나 그 생각을 표현하고 실행하는데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해야 하고, 그만큼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다들 조심해야겠지만 공무원이라면 더욱 조심스러울 것이다.

헌법 7조를 보면,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돼 있다. 헌법상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신분이므로 수장이 바뀌고 정권이 달라져도 소신껏, 행정과 정책의 수요자인 국민을 위해 봉사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반직(경력직)이든 정무직이든 모든 공무원에 해당될 사항이다. 농식품부의 경우 그 수요자는 농어민이다. 일차적으로 농어민에게 최대 봉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일부 고위 관료의 행동을 보면 자신의 책무를 자각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있다. 최근 정부 기관의 행사에 강연하러 온 최고위 공무원에 대한 얘기다. 그는 이 자리에서 “농업이 어렵다는 말은 꺼내지 말자”고 했다고 한다. 깜짝 놀랐다. 평소 그가 사려 깊은 인물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동안 본질보다는 이벤트를 선호하는 듯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도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눈으로 결과를 지켜보고자 했다.

그러나 이번 발언을 보면서 이런 나의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그의 말의 취지는 “세계화 흐름에 맞춰 우리 농업도 해외 선진국 못지 않은 경쟁력을 가지려면 농업 현실에서 오는 제약이나 현상에 불평하기보다는 창의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도전하라”는 맥락이었다. 그 말을 듣는 기자는 강연 내내 심기가 많이 불편했다고 한다. 강연에서 한 발언들이 전제 조건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농어업·농어민에 대한 철학 자체가 국정 담당자치고는 너무 편향돼 보여서다.

그가 이 정부의 고위관료로서 농업을 ‘선진화’코드에 맞추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농업은 세계무역기구(WTO)가 공인하는 ‘개도국’이다. 재벌 위주 수출 공업화의 피해자로서, 힘이 들 수밖에 없는 농업이다. 그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선진화를 운위하기 앞서 노벨경제학상에 빛나는 사이먼 쿠즈네츠 교수가 “후진국이 공업화를 통해 개발도상국으로 올라 갈 수는 있어도 농업·농촌의 발전이 없이 결코 선진국으로 진입하지는 못한다”고 한 금언을 되새겨 볼 일이다. 농업 선진화를 구호로만 외치지 말고 농업, 농민에 대한 애정부터 보여야 하는 게 아닐까.

이 대목에서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라는 시가 떠오른다. ‘미군정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 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 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고 해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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