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나의 행복한 시골살이

지난 토요일에는 이 밭 저 밭을 다니며 마당에 콩가리를 쌓았다.

들판에 누렇던 벼들은 벌써 다 탈곡하고 나머지 볏짚들은 하얀 비닐로 돌돌 말려서 눈사람처럼 서있다. 귀농하기 전에는 본적이 없어서 저 큰 둥치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그것이 소의 먹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었다. 며칠 전 친구가 까르륵 넘어가는 소리로 전화가 왔다. 친구와 여행 중인데 논에 하얗게 서 있는 게 도대체 뭐냐고 대뜸 묻는다.

거기다 “대답 잘해줘, 내기를 걸었단 말이야.” “그 속에 겨우내 먹을 소 먹이가 들어있지.”하하하 “진짜야? 나는 거름이 들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는 모른다. 소가 먹어서 거름이 되어 다시 그 논으로 뿌려지게 되는 순환농법을 쓰는 것인데 두 사람 다 맞는 무승부가 아닐까?

지난 토요일에는 마당에 콩가리를 쌓았다. 비가 온다하니 서둘러 이 밭 저 밭으로 다니며 콩가리를 하고 비닐을 덮었다. 콩을 베어놓은 자리마다 굵은 서리태가 쏟아졌다. 부직포위에도 굴러다니고 흘린 콩만도 한말은 되겠다. 바가지를 들고 빗자루로 콩잎을 쓸면서 줍는다. 콩 줍는데 정신이 팔려서 간식으로 내놓으려고 올려놓은 고구마를 깜박했다. 1시간이나 되었나보다. 아이고 내 정신이야.....집에 불이 안난 건 하늘이 도우셨다. 고구마는 다 타서 하나도 먹을 수가 없고 집안에는 온통 연기로 뒤 덮여서 기함을 했다. 절대로 가스 불 올려놓고 밖에 나가지 말아야지.

절임배추 작업 들어가기 전에 할일은 산더미다. 수확이 끝난 밭마다 쫓아다니며 고춧대 뽑아 밖으로 내야하고, 부직포 걷고 비닐도 걷어내야 한다. 무는 벌써 얼기 전에 수확을 해서 저온저장고에 넣었고, 갓이랑 쪽파는 조금 더 크라고 놔두었다. 다행히 비가 그친 후 날이 따뜻하다. 그러면 수분과 함께 못다 큰 배추도 더 클 것이고, 가을에 가뭄 들어 손가락만한 총각무도 조금이라도 커지지 않을까.

뭐든지 내 맘대로 되는 건 없다. 작년에는 무도 많이 넘쳐서 여러 군데 나누어 주었는데 올해는 부족하기만 하다. 총각무도 남아서 이집 저집 나누어줬는데 올해는 만나는 형님들마다 총각무 구걸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우리 집이 모자라면 남의 집도 모자라단다. 그러니 농사는 하늘이 짓는 게 분명하다. 제때 씨를 뿌리고 가꾸어도 어느 해는 잘되고 어느 해는 반도 못 건진다.

아침에 충주에서 사과 농사짓는 선배님이 전화를 하셨다. “그래 올해는 다 잘되었니?” “네. 모두 다  풍년이에요.” 사과농사는 너무 풍년이 들어서 값이 하락해서 농민들이 울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곳은 사과 주산지인데 사과 값이 안 좋으면 선배님도 어려우실텐데....

우리 집 별채에 걸려있는 구상시인의 ‘밭’이라는 시가 딱 와 닿는다.

농부는 심부름꾼일 뿐이다.


밭 / 구상

밭에서 싹이 난다
밭에서 잎이 돋는다
밭에서 꽃이 핀다
밭에서 열매가 맺는다
밭에서 우리는 심부름만 한다

유안나 씨는 2002년 귀농해 현재 충북 괴산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으며, 천연염색 천을 바느질 해 조각보로 만드는 것을 즐긴다. [시골에 사는 즐거움] 책의 저자이며, 2003~2006년까지 문화일보 ‘푸른광장’의 고정 필자로 활동했다.



충북 괴산/ annarew@han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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