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나의 행복한 시골살이

우리 동네 혼사가 있는 날은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잔칫날이다.

며칠 전 이장님 댁에 혼사가 있었다. 예식은 청주에서 하지만 전날에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동네잔치를 하는 것이 이 마을의 오래된 관례다. 며칠 전부터 김치하고 묵 쑤고 식혜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미리 해놓는다. 당일 아침에는 지짐을 부치고 홍어회를 묻히고 새벽부터 국수 국물 육수를 내는 것이다. 떡과 과일이 당도하면 하우스 안에 과방에서는 바빠진다.

그냥 구경하는 것만으로 신기하고 재미있다. 모처럼 온 동네 사람들뿐만 아니라 괴산군내에 계시는 안면 있는 분들을 한 번에 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누가 일을 시켜서가 아니라 일사천리로 일을 분담해서 각자의 일을 척척 해나가는데 놀랐다. 할머니들은 모여서 지짐을 굽고 젊은 언니(?)들은 과일을 씻고 예쁘게 깎아서 접시에 담는다. 떡을 담는 이와 지짐을 담는 이, 김치를 담는 이. 음료를 담는 이가 따로 있다. 국수 위에 고명으로 얹을 청포묵은 할머니들이 잘 써신다고 급히 할머니를 부른다. 국수를 마는 곳에서도 세 사람이 조를 맞춘다. 한사람은 국수를 뜨거운 국물에 넣어 조리에 건져내고 또 한사람은 꾸미를 얹고 또 한사람은 고기를 갈아서 만든 고명을 김과 함께 얹어낸다.

묵 쑤고 식혜하고
지짐 부치고 국수 말고…
이장님 댁 혼사에
동네 사람 모두 모여
내일처럼 ‘척척’
어찌 신랑 신부가
잘 못 살수가 있을까?


진짜 잔치국수다. 어젯밤 우려 놓은 국수국물이 끝내주는 잔치국수.

사람들이 “국수 언제 줄겨?”하는 말이 바로 이런 국수를 말하는 것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손녀딸 시집간다고 싱글벙글 이시고 혼주인 이장님과 형님도 예쁜 사위 볼 생각에 싱글벙글 이시다. 모두가 이렇게 축하해 주고 좋은 마음으로 신랑신부를 격려해 주니 어찌 잘 살지 못하겠는가?

본래 잔치는 이런 것이었나 보다. 도시에서 결혼해서 이런 맛을 몰랐던 게 아쉽기만 하다. 도시에서는 함 받고 예식장에 가서 식 올리면 끝이었다. 함을 받던 날도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었다. 함재비가 너무 시간을 오래 끌고 시끄럽다하여 백차가 출동하는 사건이었다. 삼성동 골목 안이 떠들썩하게 신랑 시골친구들의 목청이 올라갔던지라 고3 학생을 둔 어떤 부모님이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학생에게는 미안하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했던 20년 전 결혼식 사건(?)이 생각나서 웃었다. 우리 아들도 고3인데 동네잔치가 있어도 좋기만 하구먼... 

동네 사람들 모두 모여서 음식을 장만하고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자식을 여의는 일은 이곳 박달의 좋은 풍습이다. 앞으로도 쭈~욱 이어져서 머지않아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결혼을 할 텐데 생각하니 벌써 기분이 좋다.

일가친척 지인들 불러 모아 이런 시골잔치도 보여주고 함께 축하해주는 결혼식을 해보리라. 가능하다면 사돈댁과 합의가 된다면 우리 집 마당에서 아이들의 혼인식도 해보고 싶다. 몇 십분 만에 혼인서약하고 끝나버리는 예식장 결혼식보다 아이들과 같이 커간 꽃들이 피어 있는 소박한 정원에서 아이들 웃음소리 베어 있는 우리 집 마당에서 열리는 혼인식을 꿈꾸어본다.   

절임배추 작업공간으로 지어놓은 하우스 안에서 이렇게 근사한 잔치가 이루어지다니…. 올해 형님네 절임배추도 대박 나셨으면 좋겠다.

유안나 씨는 2002년 귀농해 현재 충북 괴산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으며, 천연염색 천을 바느질 해 조각보로 만드는 것을 즐긴다. [시골에 사는 즐거움] 책의 저자이며, 2003~2006년까지 문화일보 ‘푸른광장’의 고정 필자로 활동했다.



충북 괴산/ annarew@han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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