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댁의 건강밥상

우리집 음식 만들기의 첫째 원칙은 “있는 대로” 이다. 재료를 까다롭게 따지지 않고 그때그때 밭에서 나오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파가 떨어지면 부추나 양파를 넣고 그도 떨어지면 푸른 고추를 넣는 식이다.

두 번째 원칙은 “있을 때 잘해.” 작물이 지천으로 넘쳐날 때 말리고 절이고 얼려, 없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얼린 토마토와 감은 겨우내 귀한 간식거리가 되고, 살짝 데쳐 얼린 고춧잎도 초록이 그리워질 때면 조금씩 꺼내 무쳐 낸다.

세 번째 원칙은 “추억”으로 소싯적에 어머니가 해주신 것을 떠올리고 조리법을 유추해 내는 것. 이런 날이면, 어리고 젊었던 시절에 어머니를 도와드리지 않았던 것을 뼈아프게 반성하는 한편, “어깨 너머로 배운다”는 말을 절감하기도 한다. 부엌 드나들며 누룽지 먹던 재미에 어머니가 하시던 것을 얼핏 본 기억으로 되살린 음식이 꽤 되니 말이다. 겉절이며 깻잎찜이 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얼마 전에 만든 송편도 그랬다.

말레이시아 처자 자리나가 농사일 돕겠다며 산골을 찾아온 날은 마침 첫 서리가 내렸다. 서리 무서워 고추와 기장을 서둘러 수확하느라 함께 지낸 보름이 후딱 지나갔다. 자리나는 설거지하다가도 문득 송편이 먹고 싶다고 할 정도로 떡을 좋아했다. 직장에는 한국인 직원도 있어 쿠알라룸푸르의 한식당에 가끔 갔는데, 여태껏 먹어본 한식이 모두 맛있지만 떡이 제일 좋다며 배시시 웃었다. 오죽하면 서울에 며칠 머물 때도 바로 이웃에 떡집이 있는 곳으로 숙소를 정했단다. 추석에 차례상에 올렸다가 얼려 두었던 송편을 녹여 쪄주었더니 앉은 자리에서 열 개도 넘게 집어먹어 남편으로부터 “떡보”라는 별명을 얻었다.

고춧가루 빻으러 춘양에 나갔던 날, 일부러 떡집을 찾았건만 허사였다. 방앗간 떡은 행사용 맞춤떡이라 판매는 안 된다고 했다. 시장을 두 바퀴 돌고 채소가게 할머니께 여쭈니, “시골에서 누가 떡을 사먹어? 다 집에서 해먹지!” 하셨다. “나도 시골사람인데…” 하다가 생각난 것이 지난 봄에 후배들과 함께 만들어 먹고 남겨서 얼려놓은 쑥개떡 반죽이었다.

다음날 의기양양해진 나는 자리나와 쑥개떡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송편도 빚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지난 여름내 팥빙수에 넣었던 팥소도 얼려놓은 것이 있었다.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는 어머니의 옛 말씀을 자리나에게 들려주며 빚은 송편은 생기기는 못났어도 맛은 환상이었다.

양성댁 강분석
앙성댁 강분석(52)씨는 1997년 봄 서울에서 충북 충주시 양성면으로 귀농, 지금은 경북 봉화로 이사해 귀농 12년차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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