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전국사회부장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온 국민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는 이 땅에서 권위주의를 혁파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지도자였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농업에 남다른 애정을 보인 대통령이기도 했다. 퇴임 후에는 고향 봉하마을로 내려가 친환경농업을 몸소 실천한 그다.

온 국민의 추모 속에 그는 떠났지만, 그의 죽음을 계기로 후퇴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각성의 물결이 일고, 시대 역행적이고 가진 자에게 편향된 국정기조를 전환하라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의 교수들과 사회 원로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시국선언에 나서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빗나간 국정 운영은 농업정책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쌀직불금 사태를 처리하면서 솜방망이 처벌로 농민을 실망시켰고, 우리와 발전단계가 전혀 다른 뉴질랜드 사례를 들이대며 몇 푼 안되는 농업보조금을 축소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농협 개혁은 농민을 중심에 두는 신?경분리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논란을 거듭하는 중이다. 대규모 농업회사, 농지규제 완화, 그린벨트 해제, 4대강 정비 등도 농민보다는 자본을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농민단체에게 불법시위에 참가할 경우 보조금을 주지 않겠는 방침 역시 민주주의의 후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농민단체들은 이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쌀 조기 관세화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인데, 이런 의사 표현도 막겠다는 심사가 엿보인다. 불법 여부를 정부가 판단하는 현실에서 보조금을 볼모로 삼는 것은 정부 정책을 그대로 따르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농민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농업선진화위원회는 자칫 정부가 밀어붙이는 보조금 축소 등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

지금 국민들은 미증유의 경제위기와 마치 29년전을 방불케 하는 민주주의의 후퇴로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공권력에 의해 소통의 광장은 폐쇄되고 집회·시위의 자유가 제약 당하고 있다. 가진 자들과 재벌에는 수십조의 세금 특혜를 안겨주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더니 대규모 정리해고가 난무하며, 언론 자유마저 위협 받는 형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 쏟아진 국민들의 눈물과 한숨은 단순히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도의 뜻만 담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정부 들어 크게 후퇴하고 있는 인권과 민주주의, 암울한 사회 현실에 대한 우려와 분노이기도 했다. 철거민들이 불에 타 죽고, 노동자들이 자살하는, 자진 자들의 승자 독식사회, 비리 교육감이 아이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부당한 사회에 대한 날선 항거였다.

그런데도 이 정권은 여론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역주행의 길로 곧장 나아가고 있다. 시국선언을 하는 교수들을 ‘일부일 뿐’ 이라고 매도하고 국민들에게 ‘법 대로’만 외치고 있다.

이 나라의 국민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공권력으로 아무리 억압한다고 해도 들풀들은 반드시 일어난다. 4.19 혁명에서 시작해 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 2004년 탄핵반대 촛불,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에 이르기 까지 민주시민들은 스스로 역사를 바꿔왔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정 운영기조를 전환해야 한다. 공권력을 이용한 민주주의 억압을 중단하고 약육강식 위주의 경제사회정책을 폐지해야 한다. 정권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결단해야 한다.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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