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전국사회부장

지난 2일로 ‘촛불’이 1주년을 맞았다.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100일을 넘게 지속됐고, 서울에서만 100만의 인파가 모이기도 하면서 ‘민의’를 보여 준 바 있다.

촛불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이명박 대통령은 두 번이나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여 반성했다. “국민 마음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2008년 5월22일) “청와대 뒷산에서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며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6월22일)

그러나 촛불 이후 1년. 이명박 정부는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는가? 현실은 그 답을 구할 필요도 없을 만큼 참담하다.

바로 며칠 전인 4월22일, 이명박 정부와 여당인 한나라당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농민들과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지난해 촛불집회는 바로 한·미 쇠고기 기술협의에서 이명박 정부가 검역주권을 포기하고 국민의 건강을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에 노출시켰다는 인식에서 촉발된 것이다. 당시 정부가 서둘러 쇠고기시장을 전면 개방한 것은 공화당 부시와의 한겧?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에 선물을 주려던 굴욕외교가 아니었냐는 게 세간의 시각이었다. 미국에서는 이제 민주당 오바마가 집권하고 한·미FTA에 대한 재협상을 해야할 지도 모를 정도로 의견이 분분한 상황인데 미국에 앞서 우리가 먼저 비준하는 우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쇠고기 문제를 놓고 보면, 미국에게 빗장을 열어줬던 정부는 바로 그 점에 발목이 잡혀 캐나다로부터 미국에 준해서 시장을 개방하라며 제소 당한 상태고, 유럽연합(EU)과의 FTA에서도 쇠고기 시장 빗장을 풀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와 유럽은 미국 못지 않게 광우병이 발생한 지역이고 보면 과연 정부가 농민과 국민을 걱정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촛불에 대한 탄압으로 대변되는 민주주의의 후퇴다. 경찰은 지난 1일과 2일 촛불 1주년을 기념하는 집회를 불법으로 몰아 원천봉쇄하고 참가자들을 무차별 연행했다. 그동안 촛불관련 구속자는 100여명, 불구속 1000여 명, 체포된 사람은 총 25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사법부 고위급이 촛불재판에 개입했고, 검찰은 MBC 을 계속 압박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압수수색을 당하고, 정부는 촛불에 참여한 1842개 시민단체들을 지원대상에서 배제하겠다고 목을 조인다. 농민단체들에게도 불법집회에 참여할 경우 국고보조를 주지 않겠다며 협약서를 강요하는 일마저 벌어지고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5월18일 광주 민중항쟁 기념일이 돌아온다. 항간에서는 오늘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이 29년 전으로 되돌아갔다는 한탄이 나온다. 80년 민주화의 봄, 광주 민중항쟁을 공권력으로 짓밟은 신군부 때나 촛불항쟁을 공권력으로 탄압하는 2009년 봄이나 닮은꼴이니까.

역사란 잠시 뒷걸음질 치다가도 다시 진보하기 마련이다. 반복되는 역사는 국민들의 뜻과 역행하는 권력에 대해 분명한 답을 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겠다는 약속을 되새겨 볼 때이다.
이상길leesg@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