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올 가공원료 수매자금 38.6%나 축소… “준비할 틈도 없이 이럴 수 있나” 분통

원료가격 상승과 경기 침체 등으로 국내 농·식품 업체들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올해 전통식품업체에 대한 정부의 가공원료 수매자금 지원까지 대폭 축소돼 전통가공식품업체들이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상환 만기 도래시 영세업체 줄도산…예산 추가배정 시급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판=가공원료 수매자금 사업은 지난 90년대 초반 농산물가공산업육성법이 시행되면서 시작돼 국산원료를 사용하는 전통가공식품 업체들을 지원하고 원료 생산 농가에 소득을 보전해 주는 역할을 해왔다.

전통식품업체는 지금까지 연 3% 이율의 가공원료 수매자금을 농협 또는 농수산물유통공사로부터 대출받아 전년 대출액 대환에 사용하거나 가공원료 수매에 사용하고 있다. 가공원료 수매자금에 대한 대출한도는 해마다 조금씩 감소하는데 이같이 한도를 일정 부분 줄이는 것은 전통가공식품 업체들이 경영안정화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으로 영세한 전통식품업체들에게는 경영을 이어가는데 안정적인 정책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하지만 올해는 평년과 다르게 대환금액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자금이 배정되면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힐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가공원료 수매자금 예산은 1065억원이었으나 올해 411억원 줄어든 654억원으로 책정됐다. 이는 전년 대비 무려 38.6%나 준 것.

지금까지 업체들은 자금 신청액의 70~100%를 지원받아 왔지만 올해는 대다수 업체들이 신청액의 50%도 채 받지 못했다. 이도 업체들이 다른 방안을 모색할 겨를도 없이 불과 한 달 전쯤 일부 업체들 사이에서 배정액이 크게 축소된 것 같다고 소문이 돌면서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전통가공식품협회가 지난달 30일 주요 회원사 중 일부를 대상으로 긴급 실태조사에 나선 결과 상당수가 자금 신청액의 30~50%선에서 자금 배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아직까지 부족분에 대한 대처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들 업체들은 시급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신제품을 출시하지 못하거나 대출한도를 넘어서 경영위기와 부도 등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기시 영세업체 줄부도=그나마 담보여력이 되는 업체의 경우 일반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영세한 업체의 경우 일반대출도 받기 어려워 만기가 도래하면 부도가 날 처지다.

A업체는 3억원의 수매자금을 신청해두고 당연히 지난해와 같이 80%선에서 자금 배정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신청액의 30%밖에 되지 않는 9000만원만 배정된 것이다. 그것도 대출금 만기 상환일 불과 3일 전에 농협으로부터 올해 배정액이 전년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통보 받았다. 대환해야 할 금액이 2억1000만원이나 남은 이 업체는 결국 보다 높은 금리로 농협에서 신규대출을 받았다. 

B업체의 경우 올해 원료구매 자금으로 15억원을 계획, 자부담 8억원에 7억원의 자금을 정부에 신청했지만 신청액의 27% 정도인 1억9000만원만 배정됐다. 전년에 대출받아 다음달  대환해야 하는 자금이 4억8000만원이나 정부의 배정액으로는 원료구입은 커녕 대환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우선은 부족한 부분을 일반대출을 받아 채워 넣을 계획이다.

비교적 영세한 C업체의 경우 올해 1억원을 신청했지만 배정받은 것은 고작 2000만원. 원료구매는 커녕 당장 대환할 자금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형편이지만 일반대출을 받기도 쉽지 않다.

B업체 대표는 “일반 은행들도 공시지가의 60%만 인정해주는데 농촌지역에 공시지가는 얼마되지 않아 대출받기도 그림의 떡”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우선 1차적으로 상환기간을 연장하고 이후 예산확대와 여유자금 활동 등의 방안을 요청해 놓은 상태고 재정난과 원료, 유가, 포장재 인상 등으로 애로사항이 발생할 것으로 보여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상환기간이 연장되더라도 우량기업 등 경영 상태에 따라 차등 지원될 것으로 보여 영세 전통가공식품업체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수매자금은 대형 유통업체로?=국산 농산물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전통가공식품 업체에 대한 지원예산이 사실상 소비지·산지 협력사업 명목으로 대형 유통업체와 식품·외식업체에 지원돼 전통가공식품 업체들의 원망을 사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에 따르면 가공원료 수매자금이 축소된 이유는 2009년 예산 편성시에 산지쪽에 대한 지원 및 융자를 줄이고 대형 유통업체 등 소비지에서 산지를 견인하도록 지원하라는 지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가공식품 업체들은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지원이 산지 생산자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기본적으로 농산물을 보다 싸게 구매하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

이병달 한국전통가공식품협회장은 “국산 농산물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경영적으로 안정적인 대형 유통업체들에게는 더 많이 지원하고, 국산만 원료로 사용하는 영세한 전통식품 업체들에 대한 지원을 깎는 것은 식품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정책 방향과 맞지 않다”면서 “정부는 우선 가공원료 수매자금 상환기한을 연장하거나 분할 상환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부족분에 대한 예산을 추가로 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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