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나의 심장은 농민과 함께 할겁니다”

총장직을 마무리하고 소망하던 자유인으로 돌아가는 홀가분함일까? 아니면 환경정의 이사장이라는 3모작 인생을 시작하는 시점이기 때문일까? 그의 얼굴은 화색이 돌았다. 26일 오후 3시 양재동 aT센터에서 칼럼집 ‘더 먹고 싶을 때 그만 두거라’ 출판기념회를 갖는 김성훈 상지대학교 총장. 3류 지도자는 모르는 농업의 가치, 가족농의 길, 그리고 사람의 길에 대해 들어보았다.

-요즘 더 건강해 지신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주는 친환경급식 품질을 유지하려고 따라다녔더니 살이 붙었어요. 나이 70에 돌아보니까 이 길을 사는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청송의 배용진 선생이 그러더군요. 하늘이 가난을 주어 거친 음식을 먹은 덕에 무병장수했고, 거친 산골짜기 황토집에서 겨울엔 따뜻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살았고, 거친 옷을 입어 버티다 보니 잔병치레를 안 한다고.”

(배용진 선생은 안동 가톨릭농민회 회장을 지낸 원로 농민운동가로 현재 청송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  

-이달 말이면 상지대 총장직을 마무리하고 환경정의 이사장으로 삼모작 인생을 시작하는 셈이지요? 새로운 인생을 열어가는 소회를 말씀해 주시지요.

“작지만 강한 대학이 되게 하자는 일념으로 열정을 불태우던 4년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소망하던 자유인, ‘리베로’의 생활로 돌아갑니다. 그동안 월급 받는 의무감, 즉 그 값을 해야 한다는 직업상 약속과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기회가 찾아 온 거죠. 처음처럼 새롭고 활기차게 전개할 겁니다”

-경실련을 비롯해 모든 시민단체 대표직을 떠나시면서 환경정의 이사장을 맡으신 데는 어떤 이유가 있습니까?

“나이를 핑계로 못하겠다고 하니까 그동안 환경정의를 이끌어 오신 원경선 선생이 병원에서 전갈을 보내왔더라고요. ‘나는 77세에 맡았다’고요. 94세인 분이(웃음). 그렇게 해서 맡게 됐는데, 사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얘기하는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그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이렇게 해야 진짜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것을 보여 줘야지요. 맞는 방향이라면 서슴없이 협력하고 틀린 내용이면 거침없이 비판할 겁니다. 또 하나는 대안세력으로서 방향성 때문입니다. 개발만능이 잘못이라면 환경만능도 잘못이지요. 공존하고 상생해야 합니다. 여기에 이념과 정권이 끼어들 필요는 없지요.”

-광우병 파동 때나 DDA나 FTA, 쌀 협상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고비 때마다 바른 말을 하시는데, 전직 농림부 장관이 왜 나서냐는 식의 말도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대한 부담은 없으신지요?

“괘념치 않습니다. 내가 언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살았습니까? 나의 심장에는 오로지 농업·농민만이 있습니다. ‘농’자 팔아서 출세한 사람 중에 맨날 농민들은 비굴하고 얻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타고 난 게 아니라 농민 스스로 일어날 길을 열어주지 않은 역대 농정의 잘못이죠. 그들의 말에 부담 같은 거 갖지 않습니다. ”

-일찍이 학자로서 ‘가족농이 살 길’이라고 주창하고 그 이념을 지금까지 견지해 오고 계시는데요.

“가족농(Family Farm) 하면 마치 ‘영세소농’으로, 시대착오적 구시대농업으로 치부하고 ‘기업농’(Corporate Farm)이 대안인 양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인식입니다. 농사를 공장경영식으로 하는 곳은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단작농업(monoculture)  체제에서나 보이는 예외적인 현상이예요. 미국과 캐나다도 전체 농가의 80~85%가 소규모 가족농이 주축을 이루고 있지요.

생산액면에서는 기업농 비중이 높지만 이는 생산규모에 한정된 수치일 뿐 농업 고유의 다원적 기능과는 별 관련이 없어요. 이것을 모르고 기업농 운운하면서 소농이 주축인 가족농은 도태될 존재로 보고 기업에게, 재벌에게 농지를 풀어주는 식의 정부 정책은 아주 잘못된 겁니다.”

(김 총장은 가족농 개념에서 특히 방점을 찍는다. 기업농은 선진적이고 가족농은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여기는 몰이해가 있어서다.)  

-세계 가족농과 환경생태계를 위협하던 신자유주의의 망령이 미국경제의 몰락과 함께 붕괴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자본주의 몰락을 계기로 비교우위론, 무역자유화론, 기업농 위주의 농정체제가 바야흐로 무너지고 있지요. 그 자리에 다시 가족농 중심의 친환경, 친지역사회, 친인간적인 농정이 부활하고 있음을 위정자들은 주목해야 합니다.

친환경 유기농업도, 고품질 안전식품 생산도, 한국 특유의 발효식품 문화도 가족농 체제하에서만 지역별로 특성을 발할 수 있지요. 가족농도 살리고 소비자도 살리고 환경도 살리는 길이 로컬푸드이고 슬로푸드입니다. 지역에 기반을 둔 농업입니다. 가족농업이야 말로 식량안보주권과 환경주권을 지키는 핵심입니다. 이제 가족농의 다각화와 전문화, 협동화를 도모해야 합니다. 정부는 이런 것을 위해 농민을 지원해야 하고, 협동조합이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김성훈 총장은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 만큼 자신의 소신과 실천에 괴리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일 터. 정리하기가 만만치 않아서 그렇지, 거침 없는 답변에 인터뷰하기가 좋다. 배고프고 힘들던 시절부터 교수일 때, 농민운동과 시민운동을 할 때나 농림부 장관, 상지대 총장을 하면서 씨줄과 날줄로 엮여진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보니 어느 새 마무리할 시간이 됐다. 말미에 기자들에게 묻는다. “그래 내가 좀 변한 것 같아요?” 갑자기 받는 질문이라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변한거 없는데요? 최소한 말씀하신 걸 바꾼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늘 같은 느낌이라는 거, 기분 좋은 일이다.


관련기사 : 본사 김성훈 칼럼집 ‘더 먹고 싶을 때 그만두거라’ 발간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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