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전국사회부장

연말 연시, 지난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1년을 설계해야 할 그 중요한 시기에 국민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국회 파행사태를 지켜보면서 이 나라에 과연 미래가 있는지 고민해야 했다.

정부와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은 무려 85개에 달하는 법안을 국민적 합의도 없이 강행 처리하려 했다. 이를 막기 위해 야당 의원들은 국회 농성에 들어갔고, 국회사무처 경위들은 무력을 동원, 강제 해산에 나섰다. 그렇게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이 나라가 5공화국 시절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반대세력에 대한 공안통치가 살아나고, 경제 살리기라는 국적불명의 이데올로기가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에 국민은 없었다. 농민은 더욱 없었다. 법안 처리의 절차는 무시됐다. 한나라당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해 처리하려던 법안 85개 가운데 해당 상임위에 상정도 하지 않은 법안이 52개였고, 나머지 33개 법안도 법사위 심사를 거치지 않은 것들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국민들의 다수가 반대 내지 신중론을 펴는 한·미 FTA를 비준하려 했고, 농어촌특별세법도 폐지하려 했다. 한·미 FTA는 비준에 신중해야 한다는 여론 44.6%, 비준을 해서는 안된다는 여론 15.2%를 합해 조기 비준에 반대하는 여론이 60%에 달한다. 농특세법은 농어촌을 살리기 위해 지난 2003년 12월 여·야 합의로 기한을 2014년까지 10년 연장한 것이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농특세 연장에 합의한 것은 물론이다. 농업의 심각한 피해를 불러올 한·미 FTA 비준을 강행하고, 힘없는 농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농특세를 슬그머니 폐지하려는 한나라당이 경제 살리기라며 서민을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가? 더구나 부자들을 위한 종부세 감세 덕에 여기서 농특세로 넘어오던 연간 4800억원의 재원에 차질이 생겨 지방 재정에 부담을 주는 것도 정부와 한나라당의 작품이다.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하려던 법안들의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언론 관련 7개 법안은 언론과 인터넷을 장악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언론을 정부의 홍보도구로 전락시킨다는 비판 속에 언론노조의 총파업을 불렀고, 집시법, 집단소송법,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등은 헌법이 보장한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내용이란 비난이다. 재벌의 시장지배력을 더욱 넓혀준다는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도 문제고, 공기업 민영화가 담긴 산업은행법, 한국토지주택공사법도 논란거리다. 국가정보원법과 국가대테러활동법, 통신비밀보호법은 80년대 안기부를 재건하고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과연 이런 법안들이 경제를 살리고 사회를 개혁하는 법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미 FTA를 졸속 비준하고, 농특세를 없애고, 시장과 방송을 재벌에게 넘겨주는 게 경제 살리기이며, 국정원을 강화하는 것이 사회개혁인지. 경제 살리기 구호 속에 국민들도 민주주의도 신음하고 있다.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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