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전국사회부장

쌀직불금 국정조사가 본격화된 이 시점에서 미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유력 보수신문인 조·중·동이 농업지원금 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조·중·동의 이런 움직임이 어떤 의도에서 나왔는지 나는 모르지만 그 파장에 대해선 걱정이 앞선다. 

조선일보는 ‘줄줄 새는 농업지원금…공돈 타가는 다방농민 기승’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지원예산 75%가 보조금…직불금만 2조’에  영농자금 받아 술집·주유소를 경영하기도 한다며 선심성 퍼주기 지원제도를 전면 개선해야 한다고 썼다. 이를 받아 중앙일보는 다음날 ‘다방농민이 기승을 부린다니…’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고, 이에 뒤질 새라 동아일보도 며칠뒤 ‘겹치기-나눠먹기 방만운영 심각, 농촌살리기 사업 전면 수술 불가피’ ‘농촌지원금 최근 16년간 106조’ ‘눈먼 돈으로 인식 지원금 부당수령 많아’ 제목의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이들 보도는 농업보조금이 심각하게 낭비되고 있고, 농민들은 마치 현찰로 공돈을 타가는 것처럼 사실을 호도할 수 있다. 특히 쌀직불금 국정조사와 예산의 국회심사가 걸린 시점에 이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농업지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보도가 나오는 게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우선 사실관계를 보자. 농식품부 집계에 따르면 92년~2006년 사이 농업투융자액은 117조8000억원 수준이었고, 이 가운데 국고보조금 총액은 65조5000억원(55.7%) 수준, 나중 갚아야 하는 융자금은 31조4000억원(26.7%)이었다. 이를 대상별로 보면 생산기반 확충(SOC 및 정부사업) 등에 대한 지원이 국고투융자의 54.4%를 차지, 가장 많았다. 농업 예산이 농민 개인에게 다 돌아간 것이 아니고, 보조금의 일부만 직불금이다.

농민에게 직접 돌아가는 직불금에는 쌀소득보전, 경영이양, 친환경농업, 조건불리, 경관보전, FTA 피해보전, 과원 폐업지원 등이 있다. 직불금 예산은 98년 518억원(0.7%)에서 2007년 2조1466억원(24.6%)으로 늘었다가 2008년에는 1조9475억원(22.4%)으로 줄었다. 직접지불제는 시장개방과 가격 하락으로 피해를 입는 농민에 대한 소득보전이자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보상적 성격이 있으며, 세계무역기구(WTO)가 인정하는 지원수단이다. 직불금 비중 확대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더구나 우리나라 농업총생산액 가운데 농업에 지원해주는 비율은 5%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15%, 유럽연합(EU)은 22.3%이다. 우리의 4배다. 농업예산이 늘어나는 것인 양 보여도 연간 4.1%로 국가 전체예산 증가율 6.7%보다 턱없이 낮다.

농민들은 지금 농가부채 증가와 유가 상승, 환율 폭등으로 파산위기에 몰려 있지만, 공적자금 한 푼 받지 못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때 부실은행과 부실기업에는 160조원의 공적자금이 퍼부어졌지만, 농민에게는 돌아가지 않았다. 당시 공적자금이 과연 얼마나 회수됐고, 누가 책임을 졌는가?

대체 무엇이 퍼주기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진짜 퍼주기는 한미 FTA와 쇠고기협상이었다. 강부자를 위한 종부세 감면도 퍼주기의 대명사다. 그래놓고 농민에게 쥐꼬리만큼 돌아가는 직불금을 퍼주기라고 하는 건 개탄할 일이다. 직불금을 가로챈 부재지주가 욕을 먹어야 하는데도 엉뚱하게 자신들을 죄인으로 모는 세태를 보면서 농민들은 오늘도 여의도의 추운 겨울 바람에 떨고 있다.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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