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화된 기술 '또' 연구, 이름만 바꿔 '재탕 삼탕'

농업인기술개발사업 연구과제 중 상당수가 극소수 농민들만 재배하는 품목이 선정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농촌진흥청은 이와 관련한 본보 보도(2091호 10월23일자 3면)에 대해 “많은 농민들이 재배하는 품목은 수년간 여러 방면에서 연구와 지도가 계속돼 왔으나 특수품목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이유는 많은 농민들이 재배하는 품목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수도 없이 돼왔기 때문에 더 이상 연구를 할만한 꺼리를 찾기 힘든 반면 특수품목은 연구과제로 삼을 만한 소재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본보가 농촌진흥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의 농업인기술개발사업 연구과제 목록을 분석해보면 실제 연구내용은 비슷하면서도 타이틀만 조금씩 다른 중복연구과제가 쉽게 눈에 띤다.

이로 인해 농민들은 지도기관이 수행하는 연구 대부분이 ‘연구를 위한 연구’ 혹은 현장에서는 이미 실용화된 기술들을 재탕 삼탕 연구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실례를 보자. 2006년 충북도 농업기술원은 ‘다용도 기능성 태양고추 건조대 및 망 개발’ 과제와 ‘친환경 무농약 고추 자연건조시설 기술개발’과제를 선정해 진흥청으로부터 최종 선정됐다.

이 두 과제는 ‘타이틀’은 비록 다르지만 연구 목적과 내용은 결국 태양초 건조방법에 대한  연구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두 과제를 하나로 묶어 연구하면 비용도 줄이고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연구비를 쓰기 위한 연구’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대목이다.

이미 현장 농민들은 농사에 접목을 하고 있는 기술도 재탕 삼탕 재연구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올해 전남 고흥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신청해 최종과제로 선정된 ‘토종 흰민들레 재배기술 개발’이 그 예다. 토종 민들레 재배기술은 이미 국내에서 확립돼 충북 청원군 북이면 농민들은 영농법인까지 만들어 민들레 가공식품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뿐만 아니다. 경남 의령군 농업기술센터는 올해 ‘민들레를 활용한 기능성 사료첨가제 기술개발 과제’를 연구한다. 우연일지 모르나 충북 청원군 농업기술센터도 ‘민들레를 이용한 발효사료 개발’ 과제를 연구하고 있다. 분명 중복연구다.

이같은 중복연구는 최근 3년간의 목록을 대충만 훑어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충북의 ‘농부산물을 이용한 한우번식우 전용사료 개발과제’, 경북의 ‘한우경쟁력 제고를 위한 저비용 고효율 사료 개발과제’ 등은 내용적으로 동일한 연구과제다.

이같은 연구과제는 다른 지역의 한우농가가 이미 기술적으로 확립한 것들이다. 다만 연구결과가 전 지도기관 차원에서 공유돼 제대로 보급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연구보다는 이미 확립된 기술을 보다 많은 농민에게 전파하는 노력과 시스템을 작동해야 하는 대목이다.

농업인기술개발과제는 97년부터 올해 11년째를 맞고 있다. 한 해 평균 100개의 연구가 진행된다고 가정하면 산술적으로 1000개가 넘는 연구를 해왔다는 것이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까. 농민 다수는 진정 그들에게 필요한 연구는 찾기 힘들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농촌진흥청과 농업기술원이 과제선발 과정에서 제대로 된 검증과정을 거치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연구를 위한 연구’가 계속되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이 올해 발간한 ‘2008 농촌지도사업 영농활용자료’ 요약 목록집을 보면 진흥청 산하기관과 각도 농업기술원이 작년 한해 연구개발한 결과가 무려 15개 분야 1258건에 달한다. 엄청난 양이다. 만약 이들 연구결과가 제대로 수행됐고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면 현장농민들이 나서서 또 다른 연구를 할 필요가 있을지 충분히 검토할 때다.

이평진leep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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