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전국사회부장

최근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괴담(?)’이 하나 있다. 가볍게 쓴웃음을 짓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 내용이 너무나 암시적이어서 내내 마음에 걸렸다.

‘IMF(국제통화기금) 시즌 2’로 불리는 그 내용은 이렇다. IMF 때는 강만수 재경원 차관, 박세리 최연소 미국 골프 우승, 서태지 솔로 컴백, 게임 스타크래프트 1 출시라는 사회현상이 있었다. 지금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박인비 최연소 미국 골프 우승, 서태지 컴백 임박, 스타그래프트 2 출시 임박 등이 있다. IMF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부디 우스갯소리로, 인터넷에 떠돌던 자조적인 농담으로 끝나길 바라는 건 우리 모두 10여년 전 경제 파탄과 구조조정의 악몽을 고스란히 현장에서 목도했기 때문이다.

당시 가장 피해가 컸던 계층은 서민들이었다.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에 울었고, 농민들은 20%까지 폭등한 살인적인 농협의 고금리에 울었다. 사료를 먹이지 못한 농민들은 자식 같은 가축이 굶어 죽는 것을 보아야 했고, 농협 빚을 갚지 못한 농민들이 야반도주하거나 생목숨을 끊는 사태가 줄을 이었다.

당시 악몽에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농민들이 생산한 쌀이 있어서였다. 똑같이 경제위기를 맞았던 다른 나라들이 식량이 모자라 난리가 났을 때 우리 만큼은 예외였다. 그렇게 경제에 희생되면서도 이 나라 경제와 사회를 지키는 한 보루였던 농민들이다. 하지만 최근 기름값, 곡물값 등 수입 원자재 값이 올라 농민들이 10년 전보다 더한 고통을 당해도 쌀값을 올려주자는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수입곡물로 가공품을 만드는 기업들은 줄줄이 가격을 올리고 있는 데도 말이다. 이쯤 되면 정부도 정신 차리고 농민의 존재와 농업의 가치,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새롭게 평가할 때도 됐다. 농민은 사회안정의 마지막 보루임을 자각할 때도 됐다.

그러나 정부와 집권여당의 태도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농민들이 그토록 사료값, 비료값, 자재값 폭등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세워달라고 읍소를 해도 아직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생뚱맞게 대규모 농업회사를 만든다느니, 농민도 세계와 경쟁을 하라느니, 지원만 바란다느니 하는, 아직도 농업현장과 유리된 얘기만 늘어놓는다. 하기는 종부세 폐지 반대 주장에 재정부 장관이‘부자들 가슴에 대못 박는 건 괜찮냐’고 되묻고 고위공직자의 쌀직불금 가로채기에 대해 ‘재산권 행사’라고 생각하는 사회이고 보면 그 인식을 가늠할 수도 있겠다.

지금 정부는 경제살리기를 모든 가치에 우선하면서 좌충우돌하고 있다. 사실 경제위기의 최대 피해자는 서민이기에 경제가 망가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경제는 살려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농민의 삶을 보호하고, 국민의 식량을 생산하는 농지를 굳건히 지키는 바탕에서만 가능하다. 쌀직불금과 농지는 강부자가 차지하고 유통은 대기업이 장악하는 정책위에서 일어선 경제는 사상누각이다. 식량자급률이 27%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쌀을 제외하면 겨우 4.6%인 선진국은 없다. 지금 세계를 흔들고 있는 식량위기와 애그플레이션이 이미 우리 경제에도 영향을 주고 있지 않은가? 조만간 우리에게도 식량위기가 번졌을 때 역사에 나라를 망친 사람들로 기록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농정을 펼 것을 충고한다.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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