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풋고추·배추 등 ‘산지폐기’…생산비도 못 건져

인제군 북면 내설악작목반에서 고추 출하를 하려다가 가격폭락으로 폐기처분 결정이 내려져서 한 농민이 포장된 고추를 폐기하기 위해 다시 쏟아붓고 있다.

수확의 계절 풍요로움을 만끽해야 할 농업인들이 ‘풍년재해’로 속이 바삭바삭 타들어 가고 있다. 풍년재해는 기후조건이 좋아 농작물이 과잉 생산돼 가격이 폭락하는 현상을 두고 농업인들이 한탄하며 만들어낸 말이다.

인제군 상남면에서 1만4000여㎡의 풋고추를 재배하는 심영준(42)씨는 다음 주 수확을 포기하고 모든 고추대를 뽑아버릴 예정이다. 농업인으로써 자식같이 키운 고추를 뽑아버리는 것이 가슴 아프고 못할 짓 같지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심영준 씨는 “농사를 짓다보면 가뭄과 수해 등 자연재해로 생산량이 줄어드는게 문제였는데 이제는 풍년 때문에 가격이 폭락하는 재해가 가장 무섭다”고 말했다.

최근 한 달 동안 풋고추 10kg 한 상자가 가락동도매시장 가격으로 1만원 밑으로 거래되면서 지역농협에서는 산지폐기를 진행하고 있다. 인제농협도 올해 5600상자를 산지에서 페기처분했다. 인근 홍천군 내면농협도 3만5000상자를 산지에서 폐기처분했다.

영월군 중동면에서 고랭지배추 8만9000㎡ 경작하는 김경배(49세)씨도 봄부터 지금까지 1억3000여만원을 들여 5톤트럭 80대분을 생산했지만 밭데기로 1억원에 넘겨버렸다. 영농비용도 못 건진 것이다. 강원농협은 오는 20일까지 고랭지 무·배추 211ha를 산지에서 폐기할 예정이다.

원주시도 농협을 통해 배 22톤을 산지에서 폐기처분하기 위해 물량확보에 나섰다. 원주시 흥업면 매지1리에서 1만6500㎡의 과수원에서 배를 생산하는 이진형 치악산배원주시협의회장은 “애써 생산한 배를 생산비도 안되는 보상을 받고 폐기처분하려니 마음이 착찹하다”며 할 말을 잊었다.

과일과 풋고추, 고랭지배추 등 대부분 농작물이 풍년을 이루고 불경기로 소비는 줄어 가격이 폭락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강원농협 관계자는 “가격이 폭락한 무와 배추를 산지에서 폐기처분하는 것은 지금의 시세가 김장용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현장 농업인들은 “가격폭락으로 인한 산지폐기의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부와 농협이 수요예측을 좀 더 세밀하게 하여 생산농가의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종운baekj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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