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상길 전국사회부장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촉발된 촛불정국에서 국민에게 사과하며 머리를 조아렸던 정부·여당이 태도를 일변해 공세적 대응에 나섰다. 이번 공세를 보는 국민들 사이에서는 “80년대 군사독재 시절의 공안정국과 다를 게 없다”는 한탄이 나올 정도다.  

엄청난 경찰력을 투입해 촛불집회를 봉쇄하는가 하면 사복 체포조들이 촛불시민들을 폭력적으로 강제연행하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수배령이 떨어진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활동가들은 경찰을 피해 조계사에서 농성을 벌이는 신세다.

언론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알린 MBC ‘PD수첩’ 제작진을 농식품부가 명예훼손이라며 수사 의뢰하고, 검찰은 특별전담팀까지 꾸려 제작진을 압박하고 있다. 공영방송 KBS에 대해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가 이어지더니 정연주 사장을 해임하면서 방송 독립성과 언론자유 훼손 논란이 일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잘못된 쇠고기 협상의 진실규명 노력보다는 ‘특정세력이 광우병 괴담을 부추겨 여론을 왜곡했다’는 정부겳㈃怜?공권력의 목소리가 커지는 형국이다. 미국과의 잘못된 협상이 드러나면서 촛불민심이 폭발하자 두 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했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국회에서 따지자며 시작한 ‘쇠고기 국정조사특위’의 국정조사는 여당이 과반수를 점한 국회에서 어떤 성과도 내 놓지 못한 채 파행속에 표류하기만 했다. 총리는 불참하고, 야당의 자료제출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청문회는 무산됐고, 미국 현지조사도 성사되지 않았다.

검역주권 포기 책임, 국민건강권을 확보하지 못한 이유, 졸속협상의 배경과 책임 소재를 밝히지 못했고, 향후 먹거리 안전 확보 대책, 실효성 있는 축산농가 지원대책에 관한  논의도 물 건너갔다. 뉴스가 양비론식으로 원 구성 협상만을 집중 보도하고, 올림픽 소식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사이 국정조사는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번 쇠고기 파동은 정부가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협상에서 검역주권을 포기하고 국민건강권을 소홀히 했다는 국민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지, 누가 배후에서 촛불을 조종하고, 괴담을 유포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실규명을 위한 ‘조사’ 는 협상을 했던 정부가 받아야지, 방송이나 촛불시민에게 공권력을 들이대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쇠고기 협상으로 한우 값이 폭락하고 사료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축산농민들이 한숨을 쉬는 목전에서 ‘미국산 쇠고기는 절대 안전하다’며 국민세금으로 홍보하고 광고하는 정부·여당의 행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회지도층 인사라는 사람들이  시식회를 열고 ‘한우보다 낫다’며 미국산 쇠고기를 맛있게 먹는 것을 상식이라 할 수 있을까? 이 사회가 언제부터 상식과 몰상식의 경계도 구분 못하는 사회가 된 것인가.

혹시 촛불시민들을 ‘폭도’로 몰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부류가 있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진실은 일시적으로 눈을 가린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역사로부터 증명됐다. 오늘 내일이 될지, 아니면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쇠고기 협상의 진실은 반드시 규명될 것이다. 공권력으로 누른다고 사그러들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상길leesg@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