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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수 전 농림장관 별세“아직도 해야할 일 너무 많은데…”
고 박홍수 민주당 사무총장은 농민으로서, 농업경영인 조직을 이끄는 농민단체장으로서 일생을 농민을 위해 살았고, 정치인으로서도 농민과 서민을 대변해 왔던 이 시대의 양심이었다. 참여정부의 농림부 장관일 때는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30개월령 이하의 살코기만을 고집했던 그다. 이제 겨우 53세. 아직도 할 일이 많은 그가 별세한 것은 농민을 비롯한 서민들에게, 이 땅의 국민들에게는 너무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9·10대 한농연중앙회장 거쳐 국회 진출
농민 출신 첫 농림장관 맡아 ‘기대 한몸에’
재임 중 ‘뼛조각도 뼈다’ 검역 중단 강행


▲농민을 위해 한 평생=고 박홍수 통합민주당 사무총장은 경상남도 남해 출신으로 경상대학교 농과대학을 나와 ROTC 육군 중위로 전역한 뒤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장포리 이장을 지낸 이 땅의 농민이다. 개방화 시대, 농민의 조직화에 뜻을 두었던 그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과 도하개발아젠다(DDA) 국면에서 농업경영인으로서 농민운동을 본격화한다.

92년에 한농연남해군연합회 회장을 거쳐 98년에 한농연 경상남도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99년 제9대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됐고, 2000년 12월 10대 회장에 재선돼 농민운동에 큰 족적을 남겼다.

고인은 한농연 시절, 농가부채로 신음하는 농민들을 구하려 애를 썼고,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 등 개방농정을 막는데 주력했으며, 협동조합을 개혁해 주인인 농민에게 돌려주는데 정열을 바쳤다.

2000년 11월 ‘농촌회생대책 촉구를 위한 100만 농민 총궐기 대회’ 2001년 3월 ‘한·칠레 FTA 저지를 위한 전국농민대표자 대회’ 2001년 11월 ‘쌀포기정권 규탄 및 농협중앙회 개혁을 위한 100 만농민 총궐기대회’ 2002년 10월 ‘농정실패를 규탄하는 400만 농민 총궐기대회’는 아직도 농민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쌀을 지키기 위해 ‘농민도 파업하자’며 모내기를 거부하고, 고속도로 점거라는 새로운 시위 형식을 만들어낸 이도 그였다. 한농연 회장 시절의 그는 농민이 주인인데도 농민 위에 군림하는 농협을 개혁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고속도로 점거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선고를 받을 정도로 그는 투쟁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농가부채특별법, 농어촌복지특별법 제정 운동, 학교급식법 개정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2002년 12월 대선 국면에서 대선후보 농정공약토론회를 열어 각당의 대선후보들에게 농업·농촌·농민관련 공약을 만들어 내도록 견인하는 등 정책대안 제시에도 빈틈이 없었다. 2004년 3월 제정된 ‘농림어업인 삶의질 향상 특별법’의 배경에는 그의 노력이 있었다. 특히 고인은 한농연 회장으로서 한국농어민신문의 회장직도 맡아 기자들을 격려하며 언론을 통한 농어민의 권익보호에도 앞장섰다.

쇠고기 정국서 과로… 심장병으로 쓰러져
최대인파 모여 미쇠고기 수입 반대하던 날
이땅 농민과 국민의 가슴에 ‘촛불이 되다’ 


▲소신 빛났던 최초의 농민출신 농림부 장관=그는 한농연 출신으로서는 황창주 7~8대 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국회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2004년 4월16일 17대 총선 결과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20번으로 전농 출신의 민주노동당 비례대표였던 강기갑, 현애자 의원과 함께 당선돼 농민출신의 정치시대를 꽃피운 주역이 된 것이다. 국회의원으로서 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골목 골목, 들판 가득 울려 퍼지는 농어촌을 만들고 싶다(본보 2004년 12월 20일자)”며 농정개혁과 농협개혁에 힘을 쏟았다. 의원 시절 그는 아침 7시면 출근해 업무를 시작하고, 국정감사 때는 9권의 정책자료집을 발간한 가장 부지런한 국회의원이었다.

준비된 인물이었던 덕분일까. 그는 쌀 재협상이 끝난 직후인 2005년 1월4일 농민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돼 2007년 8월31일까지 2년8개월 동안 참여정부에서 가장 긴 기간 동안 장관직을 역임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기록됐다.

그는 재임 중 늘 현장 농정을 강조하면서 농민과 접촉했고, 농민중심의 농정을 표방하면서 농민교육을 강조했다. 농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농정을 추진하고, 농업·농촌기본법을 식품·농업·농촌기본법으로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노력했다. “개방을 피할 수 없다면 당당히 맞서라”는 말도 그의 어록에 남는다.

무엇보다 그는 장관시절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끝까지 막아, 검역 주권을 포기한 새 정부의 태도와 대조되는 정치인으로 각인됐다. 그는 지난 2006년 수입이 재개된 미국산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발견되자 “뼛조각도 뼈다. 쇠고기 검역은 원칙대로 대응해야 한다”고 검역 중단을 강행했고, 한미 쇠고기 위생검역 협상에서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만을 고집했다.

그는 장관을 그만 둔 후 대통합민주신당 최고위원, 통합민주당 쇠고기협상 무효화 추진위원장, 사무총장을 맡아 당무를 보면서도 한·미 쇠고기 협상 관련 대정부 투쟁을 지휘하던 중 지난 5월13일 오전 6시경 마포 자택에서 심장병으로 쓰러져 의식불명이 됐다.

평생을 농민을 위해 살았고,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개방하자 국민들을 위해 이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던 그다. 지난 87년 민주항쟁 이후 최대의 인파가 모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던 6월10일, 이 시대 아주 드문 양심이었던 그는 이 땅 농민들과 국민들의 가슴에 촛불이 되었다.
이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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