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식의 엄마하고 나하고

어머니는 겹경사가 났다고 요란했다. 아침마다 “잘 잤나?”에서부터 “마이 묵으라. 마이 묵어야 새끼 젖 마이 나지”라는 덕담까지…. 보이면 보이는 대로,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고양이와 닭의 안부를 챙기셨다. 어머니가 마루 끝에 앉으시면 닭이랑 고양이가 쪼르르 달려온다. 닭은 닭대로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어머니 손끝을 쳐다보고 어떤 먹이가 던져질지 안달을 했다.

닭장에서 달걀을 꺼내 올 때면 닭이 개보다도 더 사람을 따르고 영리한 동물이라고 추어 세우셨다. 이삼일 만에 달걀을 대여섯 개나 꺼내는 때도 있는데 어머니는 “우리 집 닭은 달걀을 하루에 두 개씩 낳았다”며 보는 사람들마다 자랑이다.

집 밖으로 나가실 때는 꼭 “모시 오댓노? 뭐 좀 먹을걸 주고 가야지”하신다. 모이를 어머니에게 드리면 닭들이 어머니가 모이를 던져 주기도 전에 손바닥을 헤집고 쪼아먹는다.

“저어개 나갔다 올낑게 집 잘 보고 있그래이. 갔다 와서 또 모시 주꾸마.”

“꼬댁 꼬꼬꼬 꼬댁꼬꼬”

“하하하. 이기요. 말귀를 알아 듣는다요. 저것도 한 식군기라. 인자.”

진노랑 고양이 새끼들이 섬돌 밑에 와 뒤엉켜 놀면 어머니는 생중계하는 아나운서처럼 고양이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설명하곤 했다. 마치 그들과 한데 어울려 노는 것처럼 보였다.

“저놈들이요. 발로 끄러앙고 씨름한다요. 그래 그래 미티라삐라. 옆에 놈이 좀 거들라 주라. 가마이 보고만 있노 와? 아이고오 사람맹키고 지편 내편이 있는갑따야.”

어머니는 고양이가 영물이라고 하셨다. 왜 영물이냐고 물었더니 고양이가 애기 울음소리를 내서 다른 동물들이 애기를 해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애기를 집에 혼자 놔두고 들에 나가 일을 하면 고양이가 애기 울음소리로 들짐승들을 다른 데로 유인해서 애기를 지킨다는 것이었다.

처음 듣는 얘기라 긴가 민가 싶었는데 하루는 고양이가 닭이랑 마당에서 같이 먹이를 나눠 먹다가 닭한테 쫓겨 달아나는 일이 있었다. 보통은 고양이가 닭을 물어 죽이기도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큰 어미고양이도 닭한테 쫓겨 다니는 것이 이상해서 어머니에게 물었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셨다. 완벽한 창작 설화였다.

밤에 눈이 밝아 뭐든지 찾아내는 고양이하고, 산이나 물도 훨훨 날아서 넘는 닭이 하늘나라에 가서 귀한 금 구슬을 하나 구해 오게 되었다고 한다. 닭의 등에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고양이가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우와 경치 좋다.’고 탄성을 지르는 통에 입에 물고 있던 금 구슬을 놓쳐버렸다고 한다. 그 후부터는 고양이는 닭만 보면 미안해서 쩔쩔매게 되었는데 오죽하면 ‘닭 앞에 고양이’라는 말이 생겼겠냐는 게 어머니가 만들어 낸 고양이가 닭에게 쫓겨 다니게 된 이유였다.

어릴 때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박씨부인전’을 개작한 것 같기도 한 이 설화를 들으며 벌어진 내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고양이나 닭과 어울릴 때 어머니 정신은 아주 맑았다. 이들에게 짜증내거나 마음 상하는 일이 없었다. 고양이와 닭에게 기울이는 어머니의 관심과 정성을 재미있게 관찰하던 나는 어느 순간 닭과 고양이가 우리 어머니를 정성을 다 해 돌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일까?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품고 보살피듯이 식물이나 동물들을 귀하게 여기고 즉석에서 설화까지 만들어 내는 어머니의 모습도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어서 신비하기까지 했다.

동물들의 세계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읽은 것이 ‘칼 슈커’ 박사가 지은 <우리가 모르는 동물들의 신비한 능력>이었고 그 다음 책이 ‘마타 윌리엄스’가 지은 <당신도 동물과 대화 할 수 있다>였다. 최재천 교수의 <개미제국의 발견>이라는 책까지 읽게 되었다. 어머니가 앞마당의 닭과 고양이와 주고받는 대화를 눈여겨보면서 내가 이것이야말로 ‘확장된 모성’이고 ‘우주적 온정’이라고 진단하게 된 실마리를 이들 책에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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