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목 한농연 농업정책연구소장

농림수산식품부는 지금 사상 최대의 위기에 빠져 있다. 광우병이 발생해도 수입중단을 할 수 없게 검역주권을 양보했고, 미국에서도 유통이 금지된 광우병위험 부위를 수입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동물성 사료관련 규제를 완화한 미국관보를 강화한 것으로 오역하는 치명적인 실수도 했다. 국회청문회가 열리고, 어린아이들까지 나서는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관련 기사와 논란이 신문과 TV와 인터넷을 뒤덮었다. 국민적인 반발에 그 대단한 미국도 ‘검역주권의 회복’에 동의해 주었다. 미국에서 유통될 수 없는 광우병위험 부위도 수출되지 않도록 해주었다. 외교통상부장관이 나서서 ‘재협상’에 준하는 추가협상을 해냈고, 농식품부장관은 야당의 해임건의 공세를 받았다. 취임 100일도 안 된 대통령이 나서서 세 번이나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그래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80년대부터 시장개방협상을 해온 ‘베테랑’ 농식품부의 위신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협상실력이 있나, 영어실력이 있나, 전문성이 있나, 대 국민설득 성의가 있나…

쇠고기 협상·AI 방역 모두 실패

광우병문제도 심각하지만 초동방역의 실패로 전국적으로 퍼져버린 조류인플루엔자(AI)는 양계산업을 뿌리째 흔들어 놓고 있다. 값은 고하간에 사고 팔 수도 없게 되었다. 만에 하나 AI가 사계절 발생하거나, 한 사람이라도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면, 우리 양계산업이 지속될 수나 있을 것인지? 사료값에, 돼지질병에, 분뇨처리에 양돈업을 계속할 수 있는 농가가 얼마나 될 것인지? 사료값은 오르는데, 우유수요는 줄고 하우스 난방비, 비료 등 농자재 가격과 인건비는 한없이 오르는데 농산물 가격은 내려가고....야심차게 출발한 새 농정은 날개도 펴보기 전에 추진동력을 상실하고 있다. 언제 다시 추진력을 회복하여 농업을 2,3차 산업으로 확대겧像還쳔같?될 것인가? 농민들의 한숨과 눈물이 그칠 수 없게 되었지만, 농식품부 공무원들의 사기와 심경도 말이 아닐 것이다.

농식품부 공무원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억울하기도 하고, 앞을 생각하면 암담하기도 할 것이다. 나름대로 농민을 위해 ‘그동안 무리도 했고, 죽으라고 일을 했는데.....’ 언론은 물론이고, 농민단체들조차 ‘협상실무자를 처벌하고, 장관은 물러나라’며 질책을 하고 있다. 국익을 생각하여 ‘욕먹는’ 협상을 했는데, 미국과의 추가 협상은 외교부가 다한 모양새가 되었다. 고립무원의 처지에 갇혀 그래도 싸워야 하는 특공대의 신세라고나 할까. 아마도 농식품부 공무원들은 사태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은 연일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어떻게 해야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지 생각나지도 않을 것이다. 농민단체와 더 많은 협의를 했더라면, 대 국민 홍보를 더 많이 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인가?

새농정 날개도 달기전 동력 상실

이제 농식품부 공무원들은 곰곰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째서 아무도 우리 편을 들어주지 않는가?’ ‘어째서 이런저런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되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공무원들끼리 모여서 협상전략을 짜고, 협상을 하고, 대책을 세웠기 때문이다. 반면에 미국 쇠고기협상팀은 ‘옆방’의 미국축산육우협회 임직원과 상의하면서 협상을 했을 것이다. 혹시 정부는  ‘전문가 또는 농민대표와 협의했다’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협상전략에 대해 깊은 얘기를 했다고 할 수 없다. 전문가와 농민대표가 비밀을 지켜준다는 보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책임을 나누어진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도 농민대표도 국민과 농민으로부터 ‘신임장’을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함께갈 전문가·농민조직 키워야

문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국민과 농민들의 ‘신임장’을 받은 전문가와 농민대표가 있어야 하고, 그들과 진지하게 협의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자주적인’ 전문가집단 내지 기구가 건재해야 한다. 농민들을 대표할 수 있는 농민조직 내지 기구가 건재해야 한다. 말로만 ‘정책의 동반자’라고 할 게 아니라, 그들과 진지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대안을 협의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해결을 위해 같이 고민하고, 혹시라도 문제가 터지면 국민과 농민을 향해 앞장서 해명할 것이다.

아무리 급하고, 아무리 답답해도 관(官)과 민(民)은 이제 함께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民)도 관(官)과 대등한 정보와 전문조직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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