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집에 오셨던 손님이 손바닥 두 개를 펼쳐 놓은 만한 손거울을 사다 주셨다. 제법 큼직한 거울이 방에 하나 있었기 때문에 이 손거울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어머니 옷장 틈새에 넣어 두었었는데 어머니가 돌아앉아서 이 거울을 보고 머리를 매만지고 계셨던 것이다. 방에 들어서려다 유리 통 창으로 된 방문 고리를 잡고 열려는 순간 어머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뜻밖이었다.

기울기를 조절할 수 있는 이 손거울을 요리조리 틀어가며 눈을 치 뜨기도 하고 고개를 들어 눈을 내려뜨기도 하시는 것이었다. 내 기억에 단 한 번도 어머니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만진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손에 물을 묻혀 부스스한 머리를 내려 앉히는 시늉을 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빗을 두세 개나 바꿔가며 거울 속 당신의 얼굴 표정까지 골라가며 머리를 빗은 적이 없었다.

잔칫집에 가거나 장날 정도에 동백기름을 발라 까만 쪽머리를 반들반들하게 했던 기억은 있으나 거울 들여다보는 모습을 내게 보일정도로 여유로운 시간이 어머니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 몸을 벽채 뒤로 숨겼다. 어머니는 나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이번에는 손톱깎이에서 줄을 꺼내서 손톱을 다듬기 시작하셨다. 입김으로 호호 불어가며 손톱을 다듬는 어머니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그 다음이 가관이었다. 거의 사용하지 않고 책꽂이에 세워두고 있는 내 밀크로션 병뚜껑을 열고 냄새를 킁킁 맡으시는 게 아닌가.

먼 옛날 동동구루무라 하여 하얀 백자기 통에 담긴 크림을 온 식구가 손끝에 거짓말처럼 묻혀 손등과 얼굴에 살갗이 화끈거리도록 문지르던 시절을 떠 올리시는 걸까. 어머니는 새끼손가락으로 밀크로션을 조금 찍어내서 손등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얼굴에도 조금 바르는가 싶더니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 로션 뚜껑을 닫으셨다. 익숙하지 않은 진한 향내에 속이 거북했나보다. 이 모든 풍경이 생소하면서도 반가웠다. 나는 새로운 뭔가가 또 연출될 것 같은 기대에 숨소리도 죽이고 계속 방안을 훔쳐봤다. 어머니는 이번에는 양말을 꺼내더니 그 속에서 온갖 소장품을 꺼내서 진열하기 시작했다.

나란히 늘어놓은 어머니 손 노리개 감들은 굴밤 두 개. 옷핀 큰 것 하나와 작은 것 셋. 머리 핀 두 쌍. 조개껍질 하나. 호두 한 쌍. 빗 세 개. 단추와 동전 몇 개. 만 원짜리 두 장. 아버지 사진 한 장 등등.

하나하나 점검을 끝내신 어머니는 그것을 다시 반대 순서로 양말 속에 넣기 시작하셨다. 그때쯤 나는 방문을 열고 시치미를 뚝 떼고는 어머니 뒤에 가서 어머니를 감싸 안았다. 거울 속에는 두 사람 얼굴이 겹쳐진 채 반씩 비쳤다.

“어무이. 저기 누요? 저 거울 속에 저기 누요?”

“허허. 저기 어떤 놈이고? 내 아들 아이가?”

“그럼. 저 할마씨는 누요?”

“그기 니 어미 아이가. 아들이 어미 등에 업혔네?”

이날의 경험은 내게는 너무도 큰 발견이었다. 다음날 나는 생협에서 파는 ‘자연의 벗’이라는 화장품을 두 개 주문했다. 순 식물성 화장품이라 어머니가 바르셔도 해롭지 않겠다 싶었다. 아는 여성분들에게 자문을 구해가며 뜨개질 세트도 구하고 작은 손지갑에 손수건도 색색으로 구했다. 상품들이 도착 할 때마다 호들갑을 떨며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니는 철없는 애처럼 좋아했다. 제일 인기를 끈 것은 반짇고리였다.

집을 방문하는 어느 후배가 “뭘 사 가져갈까요?” 하기에 번개처럼 떠 오른 것이 반짇고리였다. 그렇게 해서 드리게 된 반짇고리는 옛날 어머니가 쓰시던 대 광주리 모양이 아니라 투명한 플라스틱 통이었지만 어머니는 반짇고리를 보고 반색을 하셨다.

“요즘은 반짇고리가 재주도 좋아. 속이 훤히 보이네? 아이가. 골무반지도 있네?”

“그러게요. 골무가 다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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