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진 주 OECD 농무관

여행자들에게 파리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루브르와 오르세 미술관, 노틀담 대성당, 에펠탑 등 관광명소가 오밀조밀 모여 있는데다 한 시간 거리에 베르사이유, 퐁텐블루 성 등 역사 유적이 풍부하다. 그러나, 외국인으로서 살아야 한다면... 일 처리 속도가 느리고 여간해서 영어는 통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고 매우 수다스럽다. 게다가 서울  깍쟁이도 한수 접어야 할 정도로 잇속이 명확하다. 그런데 점점 정이 들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엔 몰랐는데 우리에게 잊혀진 추억을 파리는 간직하고 있었다. 골목 골목에 자리한 빵집, 수십종의 치즈집, 예술의 경지에 이른 고기집, 채소가게, 생선가게, 과자집, 조그만 식당들....그리고 그곳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물건을 사고 대화를 한다. 외곽에 초현대식겷苛淪?매장들이 즐비하지만 오랜 전통이 숨쉴 수 있는 배경은 농업과 농촌, 고향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아닐까 한다.

프랑스는 농업국가이다. 유럽에서 제일 농산물을 많이 생산(620억유로)하고 수출도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이다. 2003년 기준, 농식품 교역수지 흑자규모가 85억유로(약 10조원)이니까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연중 기후가 온화하고 거의 전 국토가 경작가능하다.(국토의 69%가 농지, 33백만 ha) 역사적으로도 먹을 것이 풍부해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등에 비해 식민지 개척이나 해외 이민 등에 소극적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대통령의 힘이 세고  중앙집권적인 국가임에도 자신의 고향을 각별히 생각하는 점이다. 시골 출신이라고 하지만 살기 바빠 왕래하지 못하는 우리네 사정과 달리, 원만한 중산층은 지방에 집들을 두세 채 가지고 있으면서 실제 그곳에 자주 들려 지역민으로서 어울린다. 동네식당에서 그 지역음식을 먹고 돈쓰는 것이 고향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는다. 프랑스 농정의 중심에 있는 지리적 표시제, 우수농산물 인증제 등이 활성화될 수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폭넓은 정서적·문화적 공감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세계화의 거센 압력에 제 목소리를 높이면서 한편으로는 농업과 농촌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대해 이미 수십년간 전략적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어린이를 안고, 농민들 손을 보다듬으며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자신들의 뿌리를 농업과 농촌(불어로는 떼루아, terroir)에 두고 있는 프랑스 사람들은 매년 2월말과 3월초 파리근교에서 농업박람회(Salon del’Agriculture)를 대대적으로 연다. 1960년대에 획기적으로 농업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신상품을 알리고 시장을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  올해로 45회째를 맞는다.

아이들에게 생생한 현장체험을 통해 자연과 농업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학습의 장이면서 최정예  프랑스 농산품을 선보이고 각 지방 특산물의 경연장 역할을 하고 있다. 전시장 면적만 14만 평방미터에, 전시 가축이 천마리 이상, 방문객이 60만명을 넘는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연과  문화가 대화하는 행사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개막식에 대통령이 어김없이 오고, 수상과 전체 각료의 절반 정도가 찾는다. 각 지방의 특산물을 시식하고 농민들과 악수하고 소의 젖을 짜기도 하며 돼지들과 장난을 친다.

프랑스에서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농업을 잘 알아야 함은 물론 농산물 지식에 해박해야 한다. 자크 시락 전 대통령은 소와 양들을 조심스럽지만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 언론의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규모는 작지만, 올해는 파리에 있는 우리 농식품 수입업체 몇 곳이 힘을 모아 합동매장으로 참여키로 했다. 그 무렵 파리에 가시는 분들은 들려 프랑스 저변에 깔려 있는 농업과 농촌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느껴 보시길 권한다. 앞으로 우리의 식문화를 세계 문화의 중심 파리에 어떻게 전파할 것인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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