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잘 살아야 선진국” 믿음 확고

최근 농업·농촌의 가치와 친환경농업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농업생산과 가격지지만으로는 어려운 농업·농촌 회생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보는 이에 대한 해법을 찾고자 환경농업단체연합회가 지난달 20∼28일까지 실시한 유럽(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친환경농업 해외연수에 동행, 취재했다. 유럽의 친환경 유기·농업뿐 아니라 농업 전반에 대해 4회에 걸쳐 연재 보도한다.

자연환경과 전통문화를 보전하려는 철학과 이를 뒷받침하는 농정이 유럽의 농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농민=자연환경·전통문화 파수꾼” 인식이 지원 원동력

“소득이 높은 나라가 선진국이 아닙니다. 농촌이 아름답고 잘 사는 나라가 선진국입니다.” 독일의 헷센 주에서 만난 한 농민은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이렇게 말한다.

독일 농업도 농가수 감소, 잉여 농산물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농업’ ‘환경’ ‘지역개발’의 통합을 지향하는 농촌개발정책으로 농민들이 희망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80%가 보조금을 지급해서라도 농업·농촌을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 즉 농가에 보조금을 주는 것은 단순히 농가의 소득 보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농민이 농촌에 머물면서 환경과 문화경관을 가꾸고 보전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국민들의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오스트리아 엘 마우 지역의 생태농업인, 뫼설 빗 힐 러씨는 실제 이것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농민이다. 힐 러씨는 초지 14ha, 산림 22ha 등을 소유하고 있다. 목재 외에 젖소 사육과 민박을 통해 짭짤한 소득을 얻고 있다. 연간 초지 조성을 통해 받는 경관보전직불금, 7000유로(매월 500유로)까지 합하면 소득은 더욱 늘어난다. 경사에 따라 받는 직불금이 차이가 있지만 한화로 계산하면 매월 55만원 정도.

그는 “나는 젖을 짜 우유를 가공 처리해 치즈와 버터를 생산, 판매하고 있지만 부인은 휴양객의 젖(민박)을 짜 소득을 올리고 있다”면서 “이곳을 찾는 가족들은 하루 이틀 관광목적으로 구경만 하다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갖고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이유가 크다”고 설명한다.

오스트리아 티롤 지역의 알프스 산자락에서도 겨울 스키어와 여름 휴가객을 수용하려는 민박시설들이 계속 신축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 지역의 엘마우 호텔은 과거 축사를 민박으로 개조한 곳이다.

이 호텔 여주인 비오굴라 씨는 “이곳은 기업에 의한 대형호텔이나 콘도보다 축사와 농가를 개조한 농가민박이 많다”며 “축사를 민박시설로 개조하기 위한 목공작업, 벽돌쌓기, 타일 붙이기 등 거의 모든 작업을 남편과 둘이서 직접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농가 및 축사를 민박시설로 개조하는 경우에도 외양을 그대로 살리면서 내부만 개조해야 하며, 신축의 경우에도 지붕과 벽의 색깔, 지붕의 방향까지 심사를 하고 농로를 내는데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방문한 국가의 농촌 경관은 어디를 둘러봐도 그림같이 좋은 곳이 많다. 이는 농민들이 농촌경관을 지키는 환경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농민들은 높은 산악지대에서 농사를 지어봐야 경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정부는 농민들이 이러한 악조건에서도 경관을 지킬 수 있도록 더 많은 보조금을 주고 있다.

전 세계적 관광지로 유명한 스위스의 ‘융프라우흐’산은 해발 4158m 봉우리인데 3454m까지 전동기차가 다닌다. 이곳의 기차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삭막해진 현대인들에게 아름다운 자연과 서정을 주는 댓가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농업경관, 자연경관, 문화경관, 전통문화를 제대로 보전하려는 ‘철학’ 과 이를 뒷받침하는 농업정책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독일 '클라인 가르텐'

소정원 1만3500개 “도시의 허파”

독일 공항에 내려 아우토반(고속도로)을 타고 도시 중심가에 들어서면 곳곳에 주말농장 비슷한 작은 정원을 볼 수 있다. 일명 클라인 가르텐, ‘도시의 허파’ 라는 소 정원은 도시 소비자를 위해 조성한 것이다. 도시인들이 채소, 과일 등 농산물 생산을 직접 체험하고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산 농업교육장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칼루시 시내에 이러한 소 정원은 1만3500개나 있다. 이 곳은 전부 시 소유 땅이며 1가구당 100평씩 분양, 일년 사용료로 보통 250유로를 낸다. 모두 유기농법으로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는데 이곳 농산물은 외부 판매를 금지하고 있으며, 가축사육도 금지해 놓고 있다. 정원을 깨끗하게 운영하지 못해 3번 경고를 받게 되면 징계위원회에 회부, 퇴출된다.

칼 루스 지역의 한 클라인 가르텐 루틴회장은 “이곳은 도시 사람들이 흙과 자연으로 돌아가 여유와 휴식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며 “국민들에게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인식시켜 주는 원천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농민직판장'

“농민들 돕자” 상공인 뭉쳐 설립

오스트리아 짤스부르크시의 면 소재지에 위치한 농민직판장은 지난 2000년 관내 상공인들이 설립, 개장했다. 농산물 판매 확대를 통해 농민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 이곳 직판장의 헤어 비아워 사장은 “농민이 있어야 지역경관이 보존되며 관광객들이 찾아와 돈을 쓰게 되고, 그러면 결국 자신들도 덕을 보게 된다”며 직판장 설립이유를 밝혔다. 상공인들도 농업을 국가의 기본산업으로 보고 농촌·농업 살리기에 동참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곳 농민직판장은 관내 농민이 생산한 친환경농산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경관보호 농민이 생산한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지역농산물은 지역에서 소비하겠다는 이른바 지산·지소 운동을 실천하는 곳이다. 비 아워 사장은 “이곳에 직판을 하는 농가들은 연 평균 10억 원 정도 판매를 하고 있다”며 “제반 경비를 제외하면 5000만원 정도의 순수익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어려운 농업·농촌의 회생을 위해선 국민들이 농업이 모든 산업의 기본이 된다는 철학을 가져야 한다” 고 덧붙였다.

윤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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