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평야에서 열리는 지평선 축제에 참가한 도시민 가족들이 메뚜기를 잡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오는 7월 민선4기가 출범한다. 3기까지의 지방자치 정착 과정을 거쳐 신자치시대를 열기 위한 지역의 몸부림은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치농정이 활성화되기 위한 조건으로 △참여시스템의 도입 △농정 로드맵의 수립 △감동의 자치 △지역자원의 발굴 등을 꼽는다. 자치농정이 활성화되기 위한 조건을 살펴본다.

#단체장 마인드를 바꿔라

1998년 가을 서울 세종로에 위치한 세종문화회관은 데모하는 농민들로 가득했다. 이곳에서는 한강상수원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공청회가 열릴 계획이었으나 경기도내 7개 시·군의 농민 수만명이 몰려들어 단상을 점거, 행사가 취소됐다. 식수원 오염 예방을 위해 전국 5대강 유역에 대한 규제 강화에 나선 중앙정부와 지역시책이 마찰을 빚은 것이다.

당시 해당지역은 한강과 그 지류가 흐르는 양평, 광주, 용인, 여주, 이천, 남양주, 가평 등이었다. 이때 당시 양평군 군수였던 민병채 씨는 친환경농업과 지역경관을 활용한 농촌관광을 지역발전 전략으로 내세우고 양평환경농업21과 문화양평건설 프로젝트를 수립한다. 그리고 재원 마련을 위해 '한강상수원보호특별법'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상수원 규제에 따른 물세를 받아내는 성과를 거둔다. 이를 기반으로 양평군은 2001년 '세계 친환경/유기농업 포럼-양평21'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하는 등 친환경농업과 지역관광을 축으로 한 지역 발전에 성공한다.

반면 한강 수계에 속한 도농복합시 Y시는 1998∼2000년 무분별한 난개발로 인한 집중호우피해로 지탄을 받아 왔고, 지난해에는 서울의 정부중앙청사 본관(2만3000평)보다 큰 청사(2만4000평)를 새로 지어 입주, 예산 낭비의 대표적 사례로 언론의 지탄을 받았다.

이처럼 한강 상수원이라는 같은 지리적 여건에도, 자치단체장이 어떠한 마인드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지역발전 정도에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지역 주민 활발한 참여 기본이다

경남도의 경우 민원처리 결과를 회신할 때는 반드시 도지사실을 거쳐야 한다. 처리과정의 적절성 여부를 도지사가 직접 챙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도청 공무원들의 자세가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3월 한 영농조합 대표가 김치수출과 관련 일본 현지의 매장과 검역과 관련된 불편을 호소했다. 과거같으면 '소관사항이 아니고 농수산물유통공사(aT)로 이첩했으니 양지하시기 바람' 정도로 회신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담당직원이 직접 생산지까지 찾아 조사함은 물론 aT 담당자에게 문의하고 해결방안까지 물어 답을 마련했다. 특히 이를 계기로 경남도내에 aT경남지사가 설립되는 계기도 마련됐다.

울산광역시 북구는 주민배심원제를 도입, 지역이나 계층별 갈등을 극복하고 있다. 3년 이상 끌어오던 '음식물쓰레기 공공자원화사업'이 주민 배심원제로 무리없이 처리를 끝낸 것이다. 이같은 주민참여시스템은 방법 또한 다양하다. '인터넷 신문고'를 비롯한 IT를 활용한 참여시스템, 주민배심원제, 분야별 심의위원회, 단체장에게 보내는 서신 등 혁신사례로 발표되고 있는 것만도 수십가지다.

이런 다양한 방식의 주민참여는 지역발전 전략의 기초자료를 제공함은 물론 주민간 갈등까지 해소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장기 로드맵 만들어라

지난해 밀양시는 '밀양농업·농촌발전 10년계획'을 수립, 읍·면·별로 특화품목 생산체계를 구축했다. 이같은 로드맵 수립작업은 인근 지자체로 확산, 중장기 농업발전계획을 수립하는 붐을 조성했으며, 경남도도 향후 20년을 내다보는 경남농업로드맵 작업에 착수, 현재 최종 발표를 앞두고 있다.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매니페스토운동도 지역에 맞는 계획성 있는 정책 실현을 위한 새로운 유권자 운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매니페스토(참공약 선택하기)란 후보자가 선거공약을 제시하면서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법과 시한 우선순위, 추진방식 등을 명시하도록 해 실현 가능성 없는 공약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공약 메뉴얼화나 농업중장기 로드맵 작업은 지역의 잠재된 성장동력을 찾아 발전전략을 수립함으로 계획성 있는 지역정책이 펼쳐질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지역재단의 유정규 사무국장은 "지역발전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농정로드맵의 완성은 자치농정의 방향과 일관성, 정책추진방법을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며 "특히 매니페스토운동은 실질적인 지역정책을 수립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운동의 하나로서 지방자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감동을 선사하라

경북 안동시는 매월 2차례씩 40명을 한 팀으로 구성해 산림박물관, 하회마을, 수도사업소 등 기관과 자치농정 투자사업 현장을 방문, 점검하는 주민행정시찰제를 실시하고 있다. 전북의 전주시는 개발제한으로 슬럼화된 교동과 풍남동 일대 한옥촌을 전통문화지구로 개발, 새로운 관광명소로 만들었다. 전통 주류박물관과 명품관, 전통문화센터 등을 건립하자 전통한옥촌에 걸맞는 한정식집과 전통찻집, 민속공예판매점 등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관광객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남 장성군은 농촌고령화로 장례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을 감안, 군청에 장례도우미를 구성해 연락이 오면 가장 먼저 달려간다. 천막과 텐트, 냉·온수기, 전기조명을 설치하고 매장신청 등 장례정차를 도와준다. 이런 지자체의 움직임은 지역주민에게 감동을 주는 행정이다.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정책사업 현장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처리가 어려운 문제를 지자체가 손수 알아서 처리해 주기 때문이다.

한농연장성군연합회 정광채 회장은 "지자체가 지역주민의 애로사항을 직접 챙져주는 정책은 주민에게 감동을 줌으로써 지방정부와 주민이 가까워지는 계기가 됨은 물론 지역농정을 가깝게 느낄 수 있어서 좋다"며 "농촌노인 보건 문제와 농촌총각문제, 아이출산지원금 등 다양한 감동자치가 실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지역 자원을 찾아라

70년대 고구마 농민데모 사건으로 유명한 함평은 자원이 없는 지역이다. 그러나 이석형 군수는 취임한 후 자원이 없는 함평의 발전을 위해 '나비'라는 자원을 고안해 냈다. 환경파괴로 동물과 곤충이 사라지는 시대에 친환경적인 여건을 갖고 있는 함평을 자원화해 축제를 기안하고 지역의 도로여건을 나비와 곤충과 관련된 설치물로 변모시켰다. 지난해 7회 함평나비축제에서는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축제장 주변에 심은 자운영을 브랜드로 판매되는 '자운영쌀'로 친환경 이미지를 굳혀놓았다.

강원도 평창군 봉명면의 '이효석 메밀꽃축제'도 새로운 자원을 발굴한 결과다. 농지도 부족하고 산밖에 없는 지역에 소설가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을 소재로 메밀을 특화한 것이다. 이효석 생가인근에 메밀을 심으면 평당 일정금액의 직접지불금을 지불해 메밀꽃밭을 조성함은 물론 메밀가공과 메밀음식을 특화해 지역특화산업으로 성장시켰다.

국내 최대 공룡발자국 화석지인 경남 고성도 이를 자원화해 '공룡나라축제'를 기획해 브랜화하는데 성공했다. 전북 김제의 '지평선쌀'도 드넓은 호남평야를 자원으로 친환경이미지를 부각함은 물론 축제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서종혁 선임연구위원은 "농촌지역이 새로운 활로를 열기 위해서는 농업분야에 국한되지 말고 농촌어메니티자원을 발굴해 지역산업과 연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찾는 일이야말로 자치농정을 활성화하는 중요한 한 축"이라고 설명했다.

<김영하·최상기·구자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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