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쌀에 남미산 과일… ‘농촌 식탁’까지 넘실

‘깨진 항아리는 붓는 대로 물이 샌다.’ 농업계의 한 학자는 한·미FTA가 농업이라는 항아리를 금가게 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아무리 물을 부어도 차지 않고 ‘강 건너 불 구경’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미FTA 협상 비준이 통과될 경우 수입농수산물의 범람은 물론 80% 농민의 퇴출로 빚어진 농촌 공동화로 식량안보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 우려되고 있다. 특히 광우병 소나 GMO식품 등 우리의 안전을 위협할 농식품이 무분별하게 밥상을 뒤덮을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만약 한겧?TA가 미국의 요구대로 타결된다면 2020년 한국인의 생활상은 어떤 모습으로 달라져 있을까. 최악의 상황으로 예상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엘리트농민에 의한 희망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개방론자들도 있다. 2020년 농부의 하루 생활을 통해 예상되는 미래 속으로 들어가 본다.

글 : 김영하 본보 편집국장 인간 광우병 발병…쇠고기 구경 못해 2020년 7월 어느 날 아침 6시.오늘은 군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다. 농민 장씨는 일찍 일어나 아이들을 깨우고 급하게 아침상을 보고 배를 채운다. 먹는 게 아니라 채운다는 표현이 맞다. 농촌이지만 밥상 위에는 우리가 농사지은 쌀과 고추를 빼곤 모두 수입산이다. 콩은 다국적기업의 GMO농산물이며, 수산물은 러시아산, 과일은 중국산 사과와 배, 미국산 오렌지, 칠레산 포도 등이며, 돼지고기는 구제역 안전국가인 유럽산이 수입되고 있다. 워낙 비싸, 반찬을 여러 개 차릴 수가 없다. 기상이변으로 수입농산물을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나라마다 비축식량이 없다며 갑자기 수출량을 대폭 줄인 탓이다. 지금껏 미국산 쌀, 호주산 쇠고기, 남미산 과일, 아시아산 채소를 사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우리나라는 가장 심각한 식량부족국가가 되어버렸다. 오늘은 동네잔치인데도 비싸서 쇠고기를 먹을 수 없다. 5년 전인 2015년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권고로 미국의 축산물 위생검역 수준을 낮춘 이후 우리나라에서 2018년 10여명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다. 그런 까닭에 광우병 위험지역이 아닌 뉴질랜드와 호주의 쇠고기를 수입해서 먹을 수밖에 없다. 그 나라 소고기값이 대폭 인상된 것이다. 무너지는 농업조직, 이어지는 구조조정 지난해 우리 마을이 줄다리기 우승과 단체줄넘기 준우승으로 종합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대회기 반납을 위해 마을회관에 있던 우승기를 가져가야 한다. 그것을 우리 가족이 맡았기에 케이스로 곱게 넣었다. 그런 과정에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온다. “… 정부가 2016년 자유무역시대에 맞는 정부 조직개편을 단행한 후 3년 사이에 공무원과 농업관련 공사에서 총 100만여명이 실직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됩니다. … 산업자원부에 흡수 통합된 농림부, 농업과학원과 환경부로 흡수된 산림청과 산림과학원 등 공직자와 민영화된 농촌공사, 대한무역진흥공사로 통합된 aT, 한국경제연구원으로 통합된 농촌경제연구원 등 정부투자기관 근무자 등 농업계 종사자가 50% 정도 구조조정 된 것…” 우리 군에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는 것을 마을사람들은 다 안다. 도청의 농정국이 산업국으로 통합되고, 군청의 산업과가 지역경제과로 통합됐기 때문이다. 농업인구가 줄고, 농업의 비중은 낮은데 너무 많은 인력이 농업계에 투입되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구조조정 이유라고 한다. 장씨는 TV를 끄고 가족과 함께 마을회관으로 갔다. 농가등록제 참여 혜택농가 고작 3가구 마을회관에는 체육대회에 참여하려는 동네사람이 모두 모였다. 한씨 아저씨가 말한다. “이번에 농업기술센터에 근무하던 지도직 이 씨가 명예퇴직 했다지? 그 사람 안됐네.” 전 이장을 맡았던 이씨는 “이젠 수입해 먹는데 그 사람들이 무슨 필요가 있어?” “우리 마을만 봐도 노인 빼고 3농가밖에 농가등록제로 남은 농가가 없는데 농업계 종사자도 우리 같이 80%이상 퇴출돼야하는 거 아니야?”라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이 마을은 ‘리’임에도 12가구에 53명이 산다. 15년전 32가구에 120명 정도가 살았으나 2007년 한·미FTA이 비준되고 2009년 DDA가 체결된 후 취농자는 없었다. 인구분포도 65세 이상이 30명, 60세 미만은 15명밖에 안된다. 그나마 젊은 사람은 공무원과 농업관련 기관 명예퇴직자 3명과 그 가족을 빼면 실제 농가등록제에 등록돼 농정혜택을 받는 농가는 3가구에 불과하다. 군 체육대회도 청년이 없어 이젠 면단위로 선수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 마을에는 이주여성으로 10년전 13살 위인 조씨와 결혼한 베트남인 툴라와 14년전 40세 총각과 결혼한 몽골인 샤시가 있다. 우리 동네에는 어린 학생을 제외하고 마을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 그들이다. 아직 30대인 그녀들은 한국사람이 다돼 체육대회 물품을 챙기는데도 이골이 났다. 지역조합 파산, RPC는 수입쌀 기지로 몇 대의 차에 나눠 타고 군 체육대회가 열리는 공설운동장으로 향한다. 달리다보니 면 소재지를 지나자 지난해 파산한 지역농협과 판매장이 흉물처럼 보인다. 2017년 농협중앙회가 신·경분리를 거부하고 경제사업을 포기하면서 농협은행으로 전락하자 전국적으로 농협들이 파산하기 시작해 우리 면 농협에도 위기가 닥친 것이다. 조합직원을 하다가 실직한 박씨는 말한다. “농협중앙회를 개혁하지 못해 지역농협이 망한 거야. 그리고 10여년전 관세를 막지 못한 정부나 이를 끝까지 반대하지 못한 우리 탓도 커. 관세철폐로 농업이 자리가 없어졌는데 농협이 무슨 필요가 있어.” 고개를 돌리니 논 사이로 RPC 건물 한 채만 덩그러니 보인다. 민간에 팔린 농협RPC는 중국 요령성과 미국 세크라멘토의 쌀을 수입, 도내 김밥집과 식당에 납품하고 있다. 공장에서는 수입쌀에 찹쌀 50%를 섞어 포장하는 일을 한다. 우리 입맛에 맞기 때문이라나. 한 노인이 공장을 보고 한 마디 던진다. “20여년전 정부가 쌀 경쟁력을 높인다며 지원한 미곡종합처리장이 어떻게 수입쌀 처리공장으로 바뀌었을까. 다 그게 과거 정치인과 대통령이 농업·농촌은 보호한다고 약속하고 막상 닥치자 개방을 밀어붙인 탓이여.” 한 때 주민들은 농협창고나 농협 RPC에서 수입쌀을 저장하거나 우리쌀과 섞어 판매하는 것을 막으려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한·미FTA 발표후 이농이 늘고, 조합이 파산하고, RPC가 민간으로 팔리면서 남아있는 노인들은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박씨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인다. “농협중앙회가 협동조합이야? 직원들만을 위한 조직이지. 재벌 삼성보다 힘이 강한 조직이란 걸 몰라. 10여년전 생각 안나나. 회사돈을 빼돌리거나 뇌물죄로 검찰에 고소돼 삼성 회장이 9천억원을 헌납해 풀려나고, 현대자동차 회장이 1조원을 헌납했는데도 유죄선고를 받았는데, 한푼도 안바친 농협중앙회장은 대법원 판결까지 무죄 판결을 받은 걸 보면 농협중앙회가 삼성보다 쎄.” 황폐한 농촌, 국회의원들 ‘공공의 적’ 오전 9시를 조금 지나 마을사람들이 체육대회가 열린 초등학교에 들어섰다. 이 학교는 군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초등학교다. ‘리’에 있던 학교는 15년전 모두 폐교되고 면단위 학교는 모두 분교가 됐다. 읍 소재지에 초등학교가 2개, 중·고교가 각 1개교씩 있을 뿐이다. 우리 면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가니 이주 여성들이 많이 눈에 띈다. 12개리가 모였으므로 이주여성의 잔치같은 분위기다. 우리 면에만 이들이 30명에 가깝다. 그러고 보면 이주여성들이 우리 농촌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조금 있으니 지역 국회의원이 군수와 도·군의원을 대동하고 학교안으로 들어온다. 이들은 천막 친 면을 돌며, 일일이 악수를 청하고 있다. 아침부터 술취한 인근 면의 한 취객이 그들의 등뒤에서 한마디 던진다. “X같은 놈들이 이젠 얼굴도 잘 안 비쳐서 등뒤에서 욕이나 실컷 하려했는데…” 정치인들은 들은 듯 만 듯 총총걸음으로 이곳을 빠져나갔다. 개회식을 마치고 경기에 들어갔다. 경기종목은 공굴리기, 단체줄넘기, 릴레이, 줄다리기 등이다. 3년 전부터 노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간단한 종목으로 바뀌었다. 공굴리기가 시작됐다. 우리 마을에서는 우리 아들과 베트남댁 툴라가 한조다. 다른 마을도 공굴리기에 참석하는 여자 대부분이 이주여성이다. 체육대회를 응원하는 동안 출향인들과 함께하는 줄다리기가 있을 것이라는 멘트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몰려간다. 50대의 젊은이(?)들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가는 것 아닌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난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한비준 전 국회의원에게 몰려간다는 얘기다. 잠시후 보니 한씨가 집단 폭행을 당한 채 쓰러져 있다. “그는 FTA와 DDA 국회비준을 선도했던 의원 중 한 사람이다. 아마 이런 사고를 당한 사람이 비준의원중 이번이 189번째로 마지막일 걸.…” TV뉴스에서 지역주민의 멘트가 흘러나오고 앵커가 등장한다. 갑자기 화면 위에서 자막이 올라온다.“음악 김뻐꾹, 촬영 박은빛, …… 제작 NM엔터테인먼트, 감독 고수농”어휴 다행이야. 영화처럼 되지말아야 할텐데. 어제 밤에도 농민들의 한·미FTA 반대시위가 도심에서 계속됐다지? 우린 어떻게 해야할까?
김영하knong120@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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