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 독단 추진에 통상 협상마다 ‘극한대립’

정부의 동시다발적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대해 각계의 반발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통상정책을 견제하기 위한 ‘통상절차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특히 정부가 농업과 여타 산업분야에 ‘대참극’를 야기할 수도 있는 한미 FTA 협상 개시를 선언하면서 나타난 일방적인 독주를 더 이상 방치 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 통상절차의 문제점, 이를 개선하기 위한 통상절차법 제정논의를 살펴본다. ☞ “국회 민주적 통제 강화, 이해 당사자 참여 필수” ▲일방적인 한·미 FTA 선언=정부는 지난해까지 한·미 FTA에 대해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자세를 취해 오다가 올들어 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대통령 신년연설의 FTA 언급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 발표 등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더니 2월2일 오후 한덕수 경제부총리 주재의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협상 개시를 결정했고, 몇 시간 후 미 의회에 대기하고 있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롭 포트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특히 정부는 전문가 의견 및 국민 여론을 청취한다며 협상 개시를 결정하던 당일인 2일 오전 공청회를 열려다 농민·시민단체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참여정부가 내세우던 ‘선대책 후협상’ 원칙 마저 한·미 FTA에는 없었다. 일방적인 정부의 독주는 예상하던 대로 반발을 불러오면서 극한의 사회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잘못된 통상시스템=FTA 협상 절차와 관련, 대통령 훈령인 ‘자유무역협정체결 절차규정’에는 ‘대외경제장관회의에 FTA 협상 개시에 대한 심의 의결을 요청하고자 할 때는 미리 공청회를 개최, 그 결과를 대외경제장관 회의에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외교통상부는 이 공청회 마저 협상 개시 결정 당일에 개최, 농민·시민단체로부터 “협상 개시를 위한 요식행위일 뿐”이라는 반발을 샀다. 미국의 경우 협상에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물론, 협상 개시 90일전, 협상결과 서명 90일전에 국회에 통보해 자문을 받고 있다. 한농연 관계자는 “농업이 붕괴할 FTA를 진행하면서도 농민단체를 비롯한 피해당사자들과의 의견조율을 하지 않은 채 협상 대상국을 일방적으로 선정한 뒤 ‘의견을 달라’는 정도의 절차만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FTA 체결 규정에는 FTA 추진위원회(위원장: 통상교섭본부장)와 실무추진위원회(의장: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 자문위원회를 두고 있어 겉으로는 국민참여가 보장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추진위와 실무추진위는 모두 공무원으로 구성되고, 자문위에는 농민대표가 일부 참여하지만, 실질적으로 정부나 자문위 의장의 요구에 따라 소집·연구활동을 수행하므로 국민 참여는 제한적이다. 김성훈 상지대 총장(경실련 대표, 전농림부 장관)은 “한·중 마늘협상 실패, 잘못된 한·칠레 FTA 협상, 세계무역기구(WTO) 쌀 재협상 실패 등으로 양극화를 부추기는 근본원인이 무늬만 미국의 무역대표부(USTR)을 흉내낸 통상교섭본부라는 조직실패에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열악한 산업구조와 관세구조 때문에 협상에 수세적인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는 통상교섭권을 국회가 갖고, 사안에 따라 일정기간 행정부에 신속협상권한(TPA)를 위임하되, 협상권을 각부처가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우리는 헌법에 규정된 통상조약의 ‘체결’과 ‘비준’에 대한 별개의 국회동의권중 ‘비준’에 대한 반쪽만 시행돼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상 책임이 방기돼 왔다”면서 “협상 전권대표의 임명에서 협상, 협상 완료 및 서명(조인)까지의 과정에서 국회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고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통상절차법 제정 시급=이런 행정부의 독단을 막고, 협상에 대한 사전영향분석, 대상국 선정, 국내대책 마련, 협상진행과 관련,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고 국회의 민주적인 통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통상절차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이와 관련,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 2일 농민-시민-사회단체와 1년간 준비한 ‘통상협정의 체결절차에 관한 법’제정안을 여·야 국회의원 41명의 공동발의로 국회에 제출했다. 권 의원은 “우리 통상협상은 국회는 물론 이해당사자와 국민의 참여 배제, 통상정보의 철저한 차단, 관련부처간 협력 미흡, 협상의 전문성 부재라는 총체적 문제점이 있다”며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국민참여와 국회의 조정,감독 역할 수행을 위해 통상절차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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