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지난달 31일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재경부, 농림부 등 관계장관들이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정안’의 재수정안에 대해 대타협을 이뤄 20여년을끌어온 생협법 제정작업에 서광이 비치고 있다. 올 9월 정기국회 통과라는법안 제정작업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소비자들은 미흡하지만 자주적 생활자치를 실현하는 단초를, 생산농어민은 직거래 활성화를 통해 제값을 받는유력한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법안 제정추진 경과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란 말 그대로 소비자들이 자발적인 협동활동을 통해스스로의 복지향상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생협의 활동은본래 농산물을 포함한 모든 물자의 공동구입외에 공동시설이용, 문화, 의료, 육아 등 생활의 전분야가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생협은 조직된 공급자에 비해 상대적 약자인 소비자의 자주적 협동을 통해 대응력을가지려는 활동이다.우리나라는 지난 79년 단위생협이 최초로 설립된 이후 87년 52개 조합으로생협중앙회가 결성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생협은 생산부문에 속하는 농·수·축·임·삼협과 중소기협 등이 모두 법적인 뒷받침을 받고 있는것과 달리 법적인 보장이 없어 단위생협은 임의단체로, 중앙회는 사단법인으로 어려운 활동을 해왔다. 이는 그동안 수차에 걸친 입법노력에도 불구하고 재경부, 산업자원부를 비롯한 기업체, 유통업계 등이 “생협을 보장하면영세상인들이 죽는다”며 반대, 최종단계에서 유보가 거듭돼 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협법이 없는 나라”로 평가돼 왔다.그러다가 생협법 제정을 공약으로 제시한 김대중 대통령이 IMF 경제위기극복방안으로 소비자와 생산자를 보호하는 직거래 활성화를 누차 강조하고,농민, 소비자 등 각계에서 법 제정 여론이 비등하면서 작업은 탄력을 받게됐다. 특히 경실련 정농생협 이사장까지 지낸 김성훈 농림부 장관이 재경부와 산업자원부 등 관계부처를 끊임없이 설득한 것이 주효했다.재경부는 4월5일 입법화를 결정했고, 소비자보호원이 실태조사에 나섰다.4월17일에는 재경부가 대통령에게 관련내용을 보고했으며, 22일에는 법안윤곽이 드러났다. 유통업계의 치열한 반대가 있었지만 5월6일에는 생협중앙회의 정책토론회가, 15일에는 소비자보호원의 공청회가 이어지면서 논의가압축됐다. 이어 6월1일 재경부는 생협을 특별법으로 보장하되 사업범위를대폭 축소하는 내용으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이에 따라 농림부는 입법예고 기간 동안 총력을 기울여 사업범위를 공산품까지 확대하고 직거래에 대한 자금 지원을 명문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지난달 31일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재수정안’을 이끌어냈다.◆법안 쟁점과 합의내용이번 재수정안의 가장 큰 성과는 사업의 종류를 공산품으로 확대하고 비조합원에게도 정하는 바에 따라 조합 이용을 허용한 것이다.입법예고안은 당초 ‘사업의 종류’를 ‘조합원의 소비생활에 필요한 농수축임산물과 그 가공품, 환경물자 및 학생생활용품을 구입해 가공·공급하는사업’으로 제한했다. 또 ‘사업의 이용’ 조항에서는 조합원이 아니면 사업을 이용하지 못하게 했으며, 이 경우 중소소매상 등 이해관계인이 주무장관에게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이러한 제한은 공산품 취금을 금지함으로써 조합 자체의 존립도 어렵게 할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자조·자주권을 얽매게해 법이 오히려 생협의 의미를소멸시킨다는 우려가 높았다. 더구나 구멍가게, 슈퍼마켓, 체인점 등의 대립축은 생협이 아니라 국내외 거대유통자본인데도 중소상인을 내세워 생협을 제한하는 것은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란 지적도 일었다. 특히 IMF체제 아래서 소비자의 경제적 이익증진과 생활편익 향상, 그리고 직거래 활성화라는 명제는 농림부 등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결국 경제장관 회의는 재수정안을 통해 사업의 종류를 △소비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구입·가공하거나 용역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규정, 공산품까지로취급품목을 확대하고 △소비생활에 필요한 공동 이용시설을 설치·운영하는사업 △생활환경개선 및 문화·복지향상을 위한 사업 등으로 대폭 확대했다. 이로써 농산물과 공산품 취급뿐만 아니라 육아, 의료 등의 사업도 문호가 열리게 됐다.또한 사업의 이용대상도 조합원 또는 회원의 이익을 위해서일 경우에는 이용대상과 이용조건을 정관에 명시할 경우 가능하도록 확대했다. 특히 논란거리였던 ‘회원이 아닌자가 사업을 이용한 때는 중소소매상이 시정명령을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은 삭제됐다.이와 함께 입법예고안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농수축임산물 직거래활성화 등을 위해 필요한때에는 생협에 ‘장소, 시설을 제공할 수 있다’고돼 있었으나 이번에 농림부의 주장으로 ‘장소, 시설 등을 제공할 수 있다’로 ‘등’을 포함시켜 자금지원의 여지도 마련했다.◆향후 일정과 전망재경부는 이번 회의결과 도출된 재수정안을 재경부(안)으로 결정, 이를 법제처로 보내 법률적인 검토를 받아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친뒤 청와대의 재가를 받아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상정한다는 방침이다.이번 안은 다른때와는 달리 토론회와 공청회, 입법예고기간중 충분한 검토를 거쳐 재경부, 산업자원부, 농림부 등 경제장관들이 합의한 것이어서 정부안으로 확정되는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다만 이번 수정안에 대해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한국수퍼체인협회, 한국편의점협회 등 4개 유통단체가 “중소유통업계가 타격을 받는다”며 공산품 취급 및 일반인 이용금지를 요구하고 있어불씨는 남아있는 상황. 특히 그동안 생협법이 계속 좌절된 이유가 이들의반대 때문이라고 볼 때 국회 재경위 등에서 이견이 나올 가능성은 상존한다.그러나 이미 국내유통시장은 미국의 월마트를 비롯한 국내외 대형유통자본에 크게 잠식이 된 상태인데다, IMF 경제위기 상황에서 농민과 소비자의 권익을 동시에 보호하는 생협법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이상길 기자>발행일 : 98년 8월 6일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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