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우리 농어업은 지금 전환기이다. 42조 구조개선사업이라는 1단계 투자도내년이면 마무리 되고, 이제 99년 이후의 2단계 투자방향을 설정할 때다.IMF 한파로 국민경제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각오로 21세기를 향해 간단없이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혁적이고 새로운 농정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다.모두 실패한 것은 아니지만 국제경쟁력 강화와 효율성 논리로 설명되는 그동안의 농정은 중대한 오류가 많았다고 평가된다. 기업농 육성을 통한 규모화, 해외원자재에 의존한 가격경쟁력 제고라는 틀은 IMF 국면에서 여지없이무너지고 있다. 엄청난 난방비를 요구하는 시설원예, 사료 등 원자재를 미국 등 외국에서 가져와야 하는 축산업 등 그동안 정부가 고소득 유망작목으로 권장해온 분야는 지금 파산 일보 직전이다.세계화니 뭐니해서 농민들 바보 만들지 말고 현실성 있는 정책으로 실질소득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만 농업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경기 화성군향남면 제암리의 쌀 전업농 김병린씨(54세)는 “탁상에서 만든 정책으로는규모화가 절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논 3천평을 가지고 있는 농가에서 쌀 60가마 나오는데, 쌀값이 낮아 이것 가지고는 8백만~9백만원밖에 못건집니다. 이런 사람이 땅을 더 사서 규모화를 한다고요? 땅값 상환금 때문에 도저히 못버텨요”.화성지역의 경우 농지가격이 현재 평당 5만원을 호가한다. 그러나 정부가농어촌진흥공사를 통해 시행하는 농지규모화사업의 평당 지원단가는 2만5천원을 넘지 못한다. 이래가지고서야 농지규모화사업이나 쌀전업농사업이 활성화될 수 없는 것이다. 수매가는 매년 동결되는 반면 토지용역비는 매년증가하는 상황에서 수지를 맞추기 어렵다는 설명이다.농촌현장에서는 이처럼 ‘현장과 괴리된 농정’의 한계를 지적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농정환경에서 쌀농사는 수익이 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있다.96년을 기준으로 농민이 평당 1만9천9백98원에 농지를 구입해서 농사를 지을 경우 수익률이 9.8%로 은행에 같은 금액의 돈을 예치할 때의 10.4%보다수익성이 낮은게 현실이다. 결국 현행 농정은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에 왔다.현 정부의 농정 5년은 평가될 부분도 많다. 농어촌발전위원회를 통해 각계의견을 모으고, 농지법 제정과 양정개혁 疋옥또垈개혁을 추진했으며, 42조농어촌구조개선 및 15조 농특세투자를 시행중인 것은 평가받을만한 일이다.농어민자율방식의 농정추진체계로 전환한 것도 성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현정부는 UR협상에서 약속과는 달리 쌀시장을 부분적으로 개방한 것을 비롯,규제완화와 산업화촉진이라는 이유로 먹거리 생산의 기본요소인 농지를 향락업소, 아파트, 공장으로 풀어주었다. 농어촌에 대한 막대한 투융자는 농정추진체계상의 문제로 상당부분 중간에 증발하거나 부실화라는 부작용도잉태했다. 법인경영체들의 부실화 논란이 끊이지 않은 것은 그 좋은 예다.협동조합 개혁, 농림수산관련조직 개편, 농산물 유통개혁 등은 미완의 개혁으로 남아 문제점이 안에서 타들어가고 있다. 이같은 시장개방과 개혁의 실패는 오늘 IMF위기 국면에서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파산의 고통으로 되돌아오는 실정이다.오늘 농업의 위기는 UR/WTO라는 엄혹한 개방환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의 농정패러다임이 해외원자재에 의존한 가격경쟁력 위주의 효율성 실현에만 경도됐다는데서 찾아진다. 오늘날 국가경제의 파탄을 몰고온 해외의존적 재벌경제구조를 농지규제완화나 저농산물가격 정책으로 농업쪽에 전가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김동희 단국대 대우교수는 “한국경제는 재벌지배적 구조이고, 고질적인 정경유착을 통한 뇌물과 고금리, 고지가로 고비용을 자초한 재벌들이 통화증발과 농지 등 토지규제의 철폐를 요구하는데서농업으로 문제가 전가된다”고 지적한다. 농정의 문제는, 여전히 재경원 등은 비교우위적 관점을 버리지 않고 있고, 농림부를 비롯한 농정당국이 가지고 있는 패러다임도 가격경쟁력 제고를 위한 규모화와 효율성 강화에만 매달린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농림부 농정발전기획단에서 수립중에 있는 99년 이후 2단계 농촌발전대책(안)도 이같은 인식을 답습하고 있어 전면적인수정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이 대책(안)은 농업을 “국제경쟁력을 갖춘능률산업”으로 규정하고 “기술·자본·정보가 집약된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생산체계는 고소득시대 식품소비시장 신장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육성하고, 농촌지역에 다양한 2차산업을 유치한다는 것으로 돼 있다.전문가들은 이제 농정 패러다임의 전환, 농정의 대개혁을 요구하고 있다.이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를 비롯한 농민단체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온바와도 일치한다.박정근 전북대 교수는 “우리나라와 같이 농지가 적고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는 토지가격이 높기 때문에 생산비를 낮추는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향후농정은 지역균형, 환경보전 등 공익적 기능을 강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서종혁 박사는 “해외원자재값 인상에 따른 최근 농업위기는 고도성장을 가정하고 해외의존적으로 짜여진 현행 농정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 증명하고 있다”며 “2단계 투자는 국제경쟁력 제고도 중요하지만 식량안보를 강조하는 국내자원이용형 농업으로 전환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제2단계 투자는 효율실현에 더해 식량안보와 시장실패 대응적인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다.전문가들은 패러다임의 전환속에서 일단 제2의 농어촌투자를 위해 1차투자이상의 투자재원 확보를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상설기구로제2의 농어촌발전위원회를 구성, 1차 구조개선사업을 평가하고 투자의 방향성 설정과 재원확보 방안 마련, 투자에 대한 감시 등을 수행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농연의 경우 지속적 농업투자를 보장하고 국가기간산업으로농업을 육성하기 위해 오는 2004년까지 6년동안 연간 6조6천억원씩 모두 40조 이상을 투자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이미 40조원규모의 투자를 약속하고 마사회와 담배인삼공사를 농림부로 이관해 재원을확충하겠다고 공약했다. 농산물 관세수입도 중요한 재원이다.농가소득 보장과 식량자급을 위한 과제로는 쌀농가와 환경보전지역·조건불리지역에 대한 직접지불제 실시와 더불어 농산물가격억제 정책의 중단이제시된다. 쌀농가 직불제 실시를 위한 재원은 지난 20년간 무려 40배나 오른 도시부문 땅값에 대한 재산세 과표를 상향조정해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직불제 재원은 WTO 규정에 따른 쌀에 대한 4조원이 넘는 보조금 감축액도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는 여론이다.완전개방에 대비한 경쟁력 확보 투자도 게을리할 수 없다. 제1기 농어촌구조개선사업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된 분야는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인력육성사업, 농업기계화사업, 시설채소·양념·고랭지채소·과실·화훼·특작유통지원사업, 한우사육기반확충사업, 젖소·닭 경쟁력제고사업, 축산단지 조성사업, 농업기술개발사업 등은 발전시켜야할 중점사업분야로 꼽힌다.그러나 이들 사업 가운데 시설투자중심사업, 해외원자재 의존적 사업은 유통과 마케팅, 물류 중심으로, 에너지 절감형으로, 국내자원 이용형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농업기계화사업, 농업기술개발사업은 업체나 특정인에게 혜택을 주지말고 농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지원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그러나 2단계 투자계획수립에 있어 중요한 것은 엘리트관료중심의 탁상공론식 정책수립은 지양하고 생산자를 포함한 전문가의 심의제도를 확립해야한다는 것이다. 특히 농업관련기관끼리 예산따먹기식으로 사업을 수립하는것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방자치단체의 투자효과 분석기능을 강화하고 전문인력을 배치하는 것도 시급한 일이다.이같은 요구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농정공약에도 상당부분 반영돼 있다. 따라서 새 정부는 농민단체 및 각계 전문가 등과 공동으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농어민들은 2단계 투자가 농정대개혁 차원에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이상길 기자><전문가 진단> 서종혁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오늘날 국가경제의 위기는 결국 해외의존적 고도성장이 낳은 필연적 결과다. 이는 농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유류값 인상과 배합사료 부족사태로 인한시설원예와 축산의 파탄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번 위기는 호황기 수요를 가정하고 시설원예와 축산을 확대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온 우리나라의해외의존적 농업정책이 얼마나 취약한 것이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현 상황에서는 농어촌에 2·3차산업 유치와 같은 개발지향적인 농정보다는식량안보가 강조되는 농정이 설득력이 있다. 해외 수입이 한계가 있는 만큼식량문제는 이제 더욱 중요하고 화급한 과제가 된 것이다.이제 농정은 국제경쟁력 제고라는 목표만이 아니라 식량안보와 같은 공익적 기능의 제고, 시장실패에 대한 대응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 방향으로 인식의 대전환을 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해외의존적 농업을 국내자원 이용형농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우와 낙농도 배합사료의존형에서 초지축산형으로 가야한다.특히 강조할 것은 우리나라 농업의 문제는 80%에 달하는 영세농의 문제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들 영세농을 어떻게 살려가면서 종합적 의미에서 경쟁력도 갖출것인가를 화두로 삼아야 한다.그리고 농정목표는 계량화된 지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발행일 : 98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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