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농림부 산하기관에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갈등이 있다. 노동조합이 반발하고 분위기는 흉흉함과 뒤숭숭함이 교차한다. 원인은 바로 낙하산 인사. 기관장이나 감사를 비롯한 일부 임원 :括 자리를정부나 정치권 출신, 심지어 군출신이 차고 앉기 때문이다.“이런 식의 인사가 있는 한 공기업의 건전한 직원들이 피해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부 동력을 상실하는 거죠. 낙하산 인사는 공기업의 고질적 병폐인 인사적체를 심화시키는 큰 원인이기도 합니다.” 농업관련 정부투자기관에 근무하는 모 과장의 항변이다.낙하산 인사는 좀더 심하게 말하자면 산하기관들의 역할중 하나라고까지표현된다. 정부의 퇴물관료들이나 정치권 출신들의 퇴직후를 보장하는 일종의 직업보험이라고나 할까. 이런 쪽에서만 본다면 정부와 산하기관은 “한번 공직자는 영원한 공직자”라는, 서로간에 ‘철밥통’을 보장해주는 ‘동심이체’라는 말도 무리는 아니다.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한 농민단체 관계자가 하는 말은 더욱 뼈아프다. “농림부 산하 기관들의 사업은 중복이 많고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사업이익률도 다른 기관들에 비해 극히 낮고 사업수행에 있어서도 설립목적인 농어촌 발전과 농어민 후생증대와 동떨어진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아요.”이런 비판적 시각속에서도 산하기관은 분명 설립목적대로 농수산업과 농어촌발전, 그리고 농어민의 경제적 후생증대를 위해 기능하려고 애쓰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공룡’ ‘조직비대화’ ‘농족’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농림부 산하기관에는 정부 투자 공기업인 농어촌진흥공사, 농수산물유통공사, 출연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국식품개발연구원 등이 있다. 농지개량조합연합회는 일선농조의 연합회라는 형식의 공법인이지만 내용에서는투자기관으로 간주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밖에 농수산물유통공사의 자회사나 재출자회사로는 한국냉장, 노량진수산시장, 한국물산 등이 있다. 정부가 출연하지는 않았지만 농진공, 농유공, 마사회, 농조연합회, 농경연,한식연, 농수축임협의 출연으로 만든 재단법인 농림수산정보센터가 있다.마사회나 담배인삼공사도 현재 농림부 소관은 아니지만 관계가 밀접하다.이들 기관은 정부 조직보다 더 많은 인력을 보유하고 정부 사업을 대행하거나 공익사업 등 갖가지 명목과 형식으로 많게는 1조원에서 적게는 수십억원의 예산을 취급하거나 지원받고 있다. 모든 농림관련 기관·단체에 근무하는 인원은 협동조합을 포함, 10만명을 훌쩍 넘어선다.이들 기관들은 기본적으로 고유영역이 있지만 일부에서는 사업이 중복되는등의 비효율이 있고, 부조리 발생의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영삼 정부 당시인 94년 부정방지대책위원회가 발표한 ‘농정부조리실태 및 방지대책보고서’의 내용은 지금도 시사하는바 크다.부정방지위는 농어촌진흥공사의 경우 간척, 경지정리 등 대규모 토목사업을 주관하고 있으며, 민간업체가 실시하는 토목공사를 감리하는 과정에서공사 부실내용을 묵인 또는 방조해주고 대가를 수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바 있다. 또 대규모 토목사업과 관련, 조사설계 및 공사감리를 담당하고있으나 그동안 설계업무가 제도적으로 독점화돼 있었기 때문에 기술이 낙후된 상태로 분석됐다. 특히 전산화된 민간업체에 비해 기술경쟁력이 뒤떨어지고 과잉인력이 사용되고 있어서 실질적으로 국가예산이 낭비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받았다.농수산물유통공사는 농수산물 가격안정, 수출입, 유통개선, 식품산업 육성을 주요 기능으로 하고 있으나 식품산업 육성은 88년 한식연이 발족하면서업무가 실질적으로 없어졌고, 가격안정 및 유통개선사업은 그 역할이 매우미미한 것으로 비판받았다. 수출입 역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농산과, 농협무역 등과 업무가 중복되고 있다고 지적됐다.부정방지위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개선대책으로 농진공의 경우 토목사업자체의 설계업무를 민간업체간의 경쟁설계로 이행하고 공사감리만 철저히담당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또 농지관리기금의 운용은 전국적인 조직망을가진 농협(단위농협)을 통해 수행하면 수수료 1%를 절감해 농정예산을 절약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했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기능을 전면적으로 검토해 조직의 정비 또는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개선방향이 제시됐다. 이런 시각은 농민단체들의 그것과도 거의 일치한다.이들 기관들은 이런 시각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가지고 자의반 타의반으로내부적인 개혁을 단행하는 등 개혁노력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노력만큼본질적으로 개혁됐다는 이미지를 주지는 못했고, 오히려 문민정부 농정실패의 한 원인이 산하기관의 비효율성에 있다는 지적마저 받고 있다. 특히 IMF로 경제 전반이 위기를 맞고 정부 투자기관 개혁 문제가 불거지자 국민정부에서 또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산하기관 개편의 방향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내놓은 ‘국민의 정부 1백대 국정과제’에서 대강을 볼 수 있다. 국민정부는 지방화, 정보화 등 농정여건 변화와 ‘작은정부’ 기조에 맞춰 관련기관 뗍汰 기능을 재정립하고조직은 경량화 한다는 방침이다. 여기 제시된 산하기관 사항을 보면, 농수산물유통공사는 농산물 수출지원, 공공적인 유통조성, 국영무역, 가격안정기능만 수행하고, 조직은 축소하는 것으로 돼 있다. 화훼공판장, 물류센타등은 생산자단체로 이관하고 부실화된 일본 현지법인 ‘한국물산’ 등 자회사와 수출지원 명분의 해외창고시설 등은 과감히 정리한다는 것이다.농어촌진흥공사는 농조연합회와 기능을 통합, 농업구조조정 지원 및 농어촌생산기반 기술지원 전문기관으로 축소개편하는 내용이다. 경지정리, 저수지 등 용수개발 관련 설계조사기능은 민간기업에 대폭 이양하고 사업자금융자실행 등 금융업무는 농업전문 금융기관으로 일원화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농업관련 기금을 통합관리한다는 방침은 이들 기관의 존립근거를 송두리째 흔드는 ‘인화성 강한’ 사안이다.국민정부의 이런 방침은 재벌개혁의 지연, 국회의 파행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약화되는 듯 보였다. 그러다가 최근 진념 기획예산위원장이 “국민이 내는 세금만큼 제대로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를 잣대로 5백52개 정부산하기관들을 재평가, 존속할 필요가 없는 기관들은 과감히 통폐합하거나기능을 민간에 넘기겠다”고 포문을 열어 다시 불이 지펴졌다.한편 이런 논의를 받아들이는 산하기관 임직원들의 반응은 매우 착잡해 보인다. “솔직히 농진공도 인사적체로 인한 인건비 증가, 문어발식 사업 확장 등 문제는 있어요. 그렇지만 농지규모화 사업 같이 전문성이 요구되고발로 뛰는 농진공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사업까지 거론하는 것은 이해가 부족한 논리에요”(농진공 행정직 K 부장).농수산물유통공사는 “보다 적은 인원으로, 보다 많은 공익업무를 수행한다”는 방침으로 조직과 정원을 대폭 축소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특히정원인 9백48명을 올해말까지 6백50명으로 30% 줄인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통공사 임직원들은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 하다.정부 및 산하기관 효율화, 작고 힘있는 정부라는 국민정부 개혁방침과 IMF라는 국가 한계상황에서 논의되고 있는 산하기관 개편은 일과성 구호로 끝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차피 산하기관들은스스로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개편은 이뤄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몇 %를 줄이고, 어떤 사업을 누가 하느냐라는 피상적 접근보다는 어떻게 하는 것이 농어민과 국민경제를 위해 보다 유리한 것이냐이다. 국민정부와 해당 기관들의 슬기로운 선택이 기대된다.<이상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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