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국민정부가 출범한 지 두달이 넘어가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성훈농림부장관에 커다란 기대를 걸었던 농민들은 지금 새정부 농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본보는 전국취재망을 동원, 농민여론을 들어봤다.정권교체때 가졌던 농민들의 들뜬 기대는 상당히 진정돼 있었다. 아무래도IMF관리체제하에서 농민들의 바라는 획기적 조치를 취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인 듯. “경제문제가 어렵기는 하겠지만 농업쪽에 관심이 적기는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여전히 새 정부와 새 장관에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었다.경북 영덕군 영해면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박창언(46)씨. “처음에는 새정부에 대한 기대가 많이 높았지요. 헌데 지금은 기대가 점점 무너지고 있심더. 대통령이 선거기간 동안 제시했던 공약이 흐지부지해 지고 있는 것같고 그 실현 가능성이 없어지고 있는 것 아닙니까.”의성 단촌에서 마늘농사를 짓고 있는 박정대(44)씨도 “정부가 농업에는관심이 전혀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농민들이 가장 많이 화제에 올린 것은 정책자금 금리의 인상문제. 경남 함안군농업경영인연합회 감사를 맞고 있는 황경규씨는 “어렵지만 융자를 받아 농사를 짓고 있다. 나는 물론이고 양돈, 시설채소농가 등 대부분 몇억씩빚이 있다. 이자가 올라가면 불안해서 농사도 제대로 지을 수 없다”고 어려움을 얘기한다. 특히 부채경감을 공약했던 새정부가 오히려 이자부담을높였다는 점에 더욱 허탈해하고 있었다.또 함안연합회 공점숙씨는 “농정은 보조니 융자니 하며 화려하다. 그러나실제 대출을 신청하면 담보가 부족해 현실적으로 어렵다. 농사를 성실하게짓고 있다고 판단된다면 신용으로도 대출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돈쓰기 어려운 농촌현실을 지적했다.직거래와 관련, 충남 금산군 금성면에서 산란업을 하고 있는 김모씨는“말로만 내뱉는 정책보다는 작은 것 하나라도 피부에 와닿는 것이 있어야한다”며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구체적인 정책이 뭐가 있느냐고 되물었다.특히 감사원이 영농조합법인에 대해 특별감사를 벌인 것에 대해 농민들은“농민을 벼랑으로 모는 처사”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충남 공주시 우성면의 유모씨는 “IMF경제난으로 위기에 몰린 농민들이 지금 감사원 감사로 도산 직전에 놓여 있다. 사료값 인상과 내수위축 등으로 돼지를 계속해서 사육해야 하는지 그만둬야 하는지 결정해야 할 시점에서 때아닌 감사 실시가 적절한 정부당국의 태도라고 볼 수 있는가”라고 따졌다. “경영을 모르는 농민들에게 규모화와 경쟁력 제고차원에서 법인결성을 유도한 정부가경영자금이나 기타 관련 사후관리를 하지 않고 이제와서 정부지원방침대로농사짓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농민들의 수준을 너무 모르는 것”이라는주장.귀농정책에 대해서도 농민들은 곱지 않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함안군 칠원면 성태영씨는 “직장인들이 ‘안되면 농사나 짓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농사도 아무나 짓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귀농을 독려하고 있는데 도시에서 고생한 사람 농촌에서 빚쟁이 되라는 정책이 되기 쉽다”고 일축했다.충남 공주시 정안면에서 영농조합법인을 운영하는 이재덕씨는 “귀농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의문을 제기했다. “진정으로 귀농이 필요하고농업으로 성공하기 쉽다면 지금 현재 농촌을 떠나고 있는 농민이나 영세성을 면키 어려운 농민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그는 이어 국내부존자원을 이용해 농업을 살리겠다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육묘장에서 사용하는 종자나 트레이, 상토원료 등 모두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을 정부가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쌀농사를 짓는 김성만(전남 순천시 해룡면)씨는 지난해부터 4만여평에서쌀농사를 짓고 있는데, 농기계로 인한 누적된 부채가 최대 걱정거리다. 또농기계 수명이 다해 새로 구입하려 해도 내구연한이 안됐다는 이유로 추가지원을 받을 수 없는 점이 안타깝다고 전한다.양계업을 하는 김용팔(전남 영광읍 와룡리)씨는 “최근 어려운 시기를 틈타 계란유통에 있어서 상인들의 고질적인 가격장난이 심해지고 있다”며“직거래를 통한 가격안정정책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전북 김제시에서 10년 넘게 산란계를 하는 왕모씨도 “피땀 흘려 농사 지은 농민에게이익이 돌아와야 하나 실제 이익은 중간 상인과 시중 상인이 차지하게 된다”며 유통구조 개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경주에서 낙농업을 하고 있는 조창환(48)씨도 “3개월 사이에 경주지역 낙농농가의 30%가 도산하는 극한 상황까지 도래했다”며 절박함을 토로했다.<합동취재반>발행일 : 98년 4월 27일
한국농어민신문webmaster@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