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농협이 ‘21세기 농산물유통의 중심’으로 자신있게 내세우는 양재물류센터가 지난 24일로 개장 1백일을 맞았다. 양재물류센터는 기존 도매시장과는 달리 경매가 아닌 ‘예약수의거래’를 통해 농산물 유통단계를 축소, 농가수취가격을 제고시키는 동시에 소비자가격을 안정시켜 주는 구실이 기대된다. 그러나 양재 물류센터는 운영면에서 몇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지난 23일 오전 10시30분경. 양재 물류센터에는 전날 종로하나로마트에 배송됐던 딸기 15상자가 반품됐다. 허연 곰팡이가 뒤덮여 버린 것. 딸기라는품목 자체가 부패성이 강하긴 하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에 상품성을 상실할수 있는 물량을 그대로 배송시킨 것은 수의매매방식의 맹점을 드러낸 것이다. 도매시장처럼 경매를 했으면 노련한 경매사들과 중도매인들이 상품의가치와 선도를 정확히 짚어냈을 것. 이런 상품이 출하됐는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배송한 것은 문제였다. 이 사건은 양재물류센터 종사자들의전문성, 물류센터의 선도유지 기능 등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다행히 농협 계통조직으로 갔으니 망정이지, 만일 일반유통업체에 그런 물량을 보냈다면 뭐라고 했을까.파렛트와 지게차에 의한 하역작업, 포장화 규격화는 농협의 홍보와는 달리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파렛트풀 시스템에 의한 물류기계화는 그 시스템에 맞춰 규격화된 산지포장을 필요로 하고, 산지에서부터 파렛트에 실려 출하돼야 한다. 물론 소비지 업체로의 배송도 파렛트에 실려가야 한다. 그러나 파렛트와 지게차에 의한 작업은 물류센터내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산지에서 올라오는 물량은 일부만 지게차로 내릴뿐 대부분 인력으로 내려져 파렛트에 쌓는다. 냉장창고 입출고 등 물류센터내 작업은 지게차가 사용되지만 배송시에도 물량이 많은 곳이라야 지게차를 사용하게 된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한 하역회사 직원은 “생산지-소비지 사이의 전체적인 물류기계화율은 10%에 불과한데 높은 사람들 찾아올 때는 괜히 지게차로 올렸다 내렸다 한다”고 꼬집었다. 물론 농협이 인력중심의 하역노조를 기계화된 용역회사로 전환시키면서 하역비를 30%나 절감하고 있는 점은 칭찬할 일이다.농협이 자랑하는 전자수발주(EDI)체계도 형편은 비슷하다. 유통종합시스템이라고 하는 이 시스템은 개발비만 88억원이 들어갔는데, 출하회원인 농협과 영농조합법인 5백여개 가운데 EDI로 연결된 곳은 1백여개에 불과하다.이미 시스템을 깔아 놓은 농협도 작업에 익숙치 않아 그냥 팩스로 송장을보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가져가는 소비지 유통업체들과도 “보안에 문제가 있어” EDI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관계자는 전했다.결국 막대한 개발비를 들인 유통종합시스템은 과투자라는 지적을 피할 수없게 됐다.직거래 큰장터라는 하나로클럽의 운영은 어떤가. 농협측은 1차 농수산물75%, 가공식품 15%, 생필품(공산품) 10%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매장의상당부분을 공산품이 점유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계산대 앞에서 한 주부의구매품목을 확인해 보니 배추, 상추, 마늘, 양파 등 1차농산물보다 휴지,빵, 식용유, 간장, 가위, 칼, 나무젓가락, 참치캔, 랩비닐, 미니가방, 라면, 오렌지쥬스(수입산) 따위의 공산품이 더 많았다. 물론 이런 경우는 극히 일부일 수 있고, ‘원스톱쇼핑’을 위한 구색 갖추기로 공산품 판매가불가피하다고 해도 이는 시사하는 바 크다.문제는 더 있다. 하나로클럽에서 우리 농산물이 홀대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산 수입 원료로 만든 오렌지쥬스, 뉴질랜드산으로 만든 키위쥬스나코카콜라 등이 요지를 점하고 있어 농협 가공식품은 왜소할 수밖에 없다.수산물의 경우 아예 버젓이 수입산을 팔고 있다. 동해안 오징어와 호주산대하가 섞인 해물모듬, 남태평양산 가오리, 중국산 낙지, 싱가포르 새우살,중국산 가리비살, 노르웨이산 훈제연어, 스페인산 참가자미 등이 농협 하나로클럽에서 직접 파는 수입수산물 목록이다.무엇보다 중요한 해결과제는 물량을 소화해줄 대량소비처를 찾는 일이다.현재 양재물류센터는 90%의 물량을 도시농협이나 중앙회의 하나로마트가 소화하고 있다. 일반유통업체중에 테크노마트에 있는 롯데 마그넷 강변점(수수료매장), 일산 마크로, 중동 까르푸, 분당 하나마트 등이 있지만 이정도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농협 물류센터는 앞으로 일반유통업체, 학교급식, 구내식당 등의 대량수요처를 개척해야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개장 1백일을 맞은 농협 양재물류센터를 평가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나는 문제점도 적지 않은 만큼 농협의 뼈를 깎는 개선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이상길 기자>발행일 : 98년 4월 27일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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