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농림수산 협동조합이 흔들리고 있다. 갈수록 조합원과 멀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최근에는 경영위기가 심화돼 스스로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현실이다. 경제사업은 경제사업대로 부실화되고, 신용사업은 신용사업대로 위기를맞고 있는데다 협동조합의 원칙은 실종상태에 놓였다. 농어업, 농어민, 나아가 국민경제를 위해서라도 협동조합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다가왔다. 협동조합 위기의 현상과 그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시리즈를 준비했다.‘자본 전액 잠식 44개. 자본일부 잠식 19개. 자본잠식액 7백83억원.’ 부실종금사나 증권사의 결산내용처럼 보이는 이 내용은 놀랍게도 축협의 경영상태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자기자본을 전액 잠식했다는 것은 곧 ‘파산’을 의미하는 것이다.1백93개 축협 회원조합중 1백46개 지역조합의 6.2%인 9개조합이 자본 일부잠식에 들어갔고 14.3%인 21개 조합이 전액 잠식상태이다. 47개 업종조합의경우 21.3%인 10개가 자본 일부 잠식, 48.9%인 23개가 자본을 전액 잠식하는 부실상태에 놓였다.축협만 그런 것이 아니라 농협도 마찬가지다. 1천2백86개에 달하는 회원농협 가운데 적자조합은 38개, 그중 절반은 2년 이상 적자조합이다. 자기자본을 모두 까먹고 마이너스 상태에 있는 자기자본 적자조합도 17개에 달한다.뿐만 아니라 회원조합에 대한 중앙회의 지원이 중단될 경우 전체의 89.6%인1천2백3개 조합이 적자를 시현할 것으로 분석된다.수협의 경우도 86개 회원조합 가운데 18%인 16개 조합이 지난해 결산에서적자를 기록했다. 자본잠식중인 조합도 6개나 된다. 임협 역시 1백43개 회원 임협중 40개 이상이 적자상태이다.협동조합의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경제·사회적 지위향상을 꾀해 보려던농어민 조합원들에게 이익을 주기는 커녕 어려울 때 쌀한가마씩 출자한 그들의 소중한 재산마저 까먹는 상황이 온 것이다.그런데도 농수축협은 본질적인 변화보다는 타성에 젖어 농어민과 괴리된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다. 조합장이 1억원이 넘는 퇴임공로금을 받아가는조합이 있는가 하면 수익이 많이 남으면 배당금을 나누는게 복잡하니까 일부러 직원 보너스 줄 수 있을 만큼만 수익을 남기는 조합이 있다는 비판도나온다. 그러면서 농어민 조합원들이 드나드는 조합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이같은 협동조합 경영의 위기는 다양한 각도에서 원인이 주어지고 있지만가장 큰 요인은 이대로 두면 조합으로서 구실을 할 수 없을 만큼 조직기반이 취약해진 점이 가장 먼저 꼽힌다. 즉 조합원이 되는 농어민 인구가 감소하고 노령화, 부녀화로 내용면에서의 조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또한 경제권·생활권 중심보다는 단순히 읍면단위로 조합이 설립돼 규모가영세하고, 이러한 관할구역의 협소로 인해 경영규모를 맞추기 어려워진 것이다.더구나 대도시 소재 조합의 경우 조합원 수도 적고, 농사를 짓지 않는 조합원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보통 1백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리고 있으며,예수금이 1천억원이 넘는 등 사실상 상호신용금고나 신용협동조합화 한지오래이다. 조합원이 없는 조합의 문제는 도서지역 및 산간지 농협, 간척지수협, 산림비율이 적은 임협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특히 농협의 경우 90년 이후 자기자본 증가율이 12.5%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고정자산의 연평균 증가율은 23.8%나 증가하는 등 무분별한 고정투자로재무구조를 악화시키고 있다. 조합의 이러한 고정투자는 사업재원을 부족하게 하고, 이를 메우기 위해 외부조달을 늘리게 하고 있으며, 예수금의 전용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뿐만아니라 최근 양곡사업 등 판매사업에 관련된 사기에 연루되거나 신용사업의 무리한 추진으로 거액 부실채권을 안고 쓰러져 가는 조합이 등장해물의를 빚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거액 부실채권 문제는 합병을 추진하는데도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또 신용사업에 의존하는 협동조합의 구조는 금융자율화와 IMF위기에 의해더욱 악화일로를 치닫게 하고 있다. 농협의 경우 조수익에서 신용사업의 의존도는 70%를 넘고 있으며, 이 때문에 4단계 금리자유화와 IMF로 인한 금융경색은 조합 경영에 엄청난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실제로 농협은 보통·자립·자유저축 예탁금의 30%만 초단기 고금리상품인 알짜배기 예탁금으로이동할 경우 조합당 5천2백만원의 수지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조합의 절반이상이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조합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축수산업은 전문화가 심화되는데 조합의 전문 서비스 기능은 지난날증산시대의 그것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업경영비절감을 위한 각종 지도지원기능, 유통서비스기능이나 판촉, 구매 등 영업기능을 협동조합이 해 주길 바라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매우 제한적이다. 품목별 욕구를 충족해 줄 수 있는 전문조합이나 업종조합의 설립은 기존 조합과 중앙회가 실질적으로 막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이처럼 협동조합은 본질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스스로가 원하든 원하지않든 개혁하지 않으면 더 이상 존립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농림수산 협동조합이 당면한 경영위기를 극복하고 농어민 조합원의 구심역할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정상화’될 수 있도록 개혁의 고삐를 당겨야 할 시점이다.<이상길 기자>발행일 : 98년 5월 7일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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