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농수축협 임직원 가운데는 자기가 있는 곳을 일컬어 ‘회사’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협동조합 임직원들이 그만큼 ‘협동조합’과‘회사’를 구별할 줄 모르거나 구별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협동조합운동에 30년 이상 몸담은 한 인사는 “회사라는 말이 입에 붙은임직원들에게 농협법 1조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개탄한다. 그는 “농협법 1조는 농협이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통해 농업생산력의 증진과농업인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향상에 목적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고 주의를환기한다. “회사가 아니라 협동조합”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일부 협동조합 임직원들은 “그건 교과서적인 얘기고, 조합이 살아야 조합원도 사는 것 아니냐”고 강변한다. 특히 그들은 최근 “ICA(국제협동조합연맹)의 조류가 기업적 경영을 일정부분 수용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 권익대변 활동과 지도사업, 환원사업 등을 피하려 하고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조합원과 조합장의 무지를 탓하면서 경영측면을강조하고 있다.이런 마인드는 결국 신용사업 치중, 판매사업 기피, 조합원에 대한 높은문턱과 기업에 대한 과다한 대출, 수입농산물 취급, 정부에의 의존 등으로나타난다. 그러나 ICA가 지난 1995년 9월 창립 1백주년을 맞아 채택한 ‘협동조합 정체성에 관한 성명’에 나타난 7대원칙은 오히려 협동조합으로서정체성을 지켜나갈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 경영에 치우치라는 말은 단 한글자도 없다.고현석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은 “협동조합이 처한 지금의 위기는 오히려 사상의 위기, 정체성의 위기”라며 “협동조합이 이른바 경영을 내세워일반기업을 추종한다면 백번 실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왜냐하면 그것은이미 기업도 아니고, 협동조합도 아닌 매우 불완전한 사업체이기 때문이란것이다.협동조합 정체성의 위기는 최근 협동조합 개혁논의에서도 드러난다. 정부의 개혁안이나 농수축협 스스로 제출하는 개혁안 모두 조합원과 조합보다는조합과 중앙회가 살아 남기 위한 경영의 효율화에 중심을 두고 있다. 특히농수축협측은 조합장 및 중앙회장 직선제를 들어 마치 협동조합 민주화가끝난 것처럼 간주하면서 ‘현실적인 경영’을 중시하는 움직임이다. 따라서개혁논의도 조합원 참여증대보다는 경영효율화에 집중되고 있고 중앙회 사업의 각 부문을 자회사화하자는 논의가 쉽게 나온다.김영철 건국대 교수는 이에 대해 “협동조합의 경영여건이 변화하는 것은사실이지만 이것을 극복하는 것은 조합원 참여도 제고와 민주적 관리의 활성화를 기반으로 한 사업 효율성 제고라는 방법을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협동조합 자회사의 경우에도 △새로운 분야에 진출시△사기업 섹타와 경쟁이 치열한 분야 △조합원 사이의 이해관계가 대립되는사업 △협동조합간 국제교역 부문 등 제한된 분야에서만 도입돼야 한다고지적했다.협동조합은 협동조합으로 기능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기업적 잣대에 입각한 당장의 경영성과에 매달릴 경우 장기적으로는 조합원과 유리되고, 이는 곧 조합원의 외면으로 이어져 협동조합 스스로의 붕괴로 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협동조합 개혁은 협동조합을 위해서가 아니라농어민 조합원을 위해 진행돼야 하며, 이 목적이 조합이나 중앙회 경영이라는 수단에 ‘사역’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끝><이상길 기자>발행일 : 98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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