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는 수입개방과 저농산물 가격정책이 농민들을 죽이고 있다. 식량안보를 짊어지고 나갈 농민들이 죽어나가는 판에 식량안보는 그야말로 '목표'로만 남았다. 우루과이라운드(UR)와 그 결과물인 세계 무역기구체제(WTO)를 이유로한대책없는 개방정책이 농민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 가격정책은 축소되고,가격지지 보조금이 줄어든 쌀과 보리 농사 대신 시설원예 일부 품목을 선택한 농민들은 필연적으로 예상된 농산물가격 폭락사태에 그야말로 대책없이노출되고 있다.
돈되는 농업이다, 첨단농업이다, 수출농업이다 해서 적극 권장된 시설원예. 그러나 일부 시설작목은 농산물 수입개방으로 들어온 칠레산 포도, 캘리포니아산 오렌지와 경쟁하다가 부채작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시경제학의 논리로 볼 때 가격하락은 과잉생산이 원인이다. 수요보다초과 생산된 농산물은 단지 5%만 초과해도 폭락하기 마련. 그러나 과잉생산은 농민들만의 책임인가. 수입을 개방했다면 그 대체작목을 제시하거나가격을 보장하는 것이 정부의 몫이다. 더구나 농업피해에 대한 별 대책도없이 진행되는 칠레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은 농민들을 절망케 하고 있다. 과연 농산물 수급정책은 있는가.
우리나라의 농산물 가격정책(유통정책)은 그동안의 정부 성격과는 상관없이 저농산물가격→저임금→공산품 수출로 이어지고 있다. 쌀과 보리의 수매가는 UR 이후 가격보조금 축소 논리에 따라 거의 동결되거나 물가인상률이내에서 결정됐고, 시설원예 등 일부 대체작목들은 수입개방으로 외국 농산물이 물밀듯이 밀려들어 과잉공급을 부채질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농산물 수급정책은 구조라는 본질을 틀어쥐지 못하고농민들의 책임을 일차로 하는 대증적 차원에서 맴돌고 있다. 정부의 대표적인 농산물 수급정책은 농안기금사업. 이 기금의 규모는 올해 2조1천3백10억원이다. 이것으로 정부는 △비축사업 △수매사업 △채소수급안정사업 △유통시설 개선 융자 △우통정보 조사 △수출진흥사업 △도매 시장 운영개선 △물류표준화 등을 시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2002년까지 농림사업의 30%를 유통개선에 투자한다는 획기적 복안을 가지고 있다. 또 제도적으로 가을무·배추, 마늘, 양파, 봄무·배추, 고랭지무·배추,·고추 등에 대해 최저보장가격제도를 실시하고, 유통명령, 유통협약 등을도입했다. 사과·배를 대상으로 하는 농업재해보험도 준비중이다.
그러나 이들 제도는 농민들에게 기본적인 재생산을 위한 가격실현조건을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미흡한 실정이다. 채소수급안정사업과 연결돼 있는 최저가격보장제도는 생산비 이하의 경영비 수준에 불과하고, 농업관측은 품목과 전망이 제한적이다. 특히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가뭄과 구제역, 산불 등 재난에 대해서는 '구호'수준의 지원만 시행되는 실정이다. 이는 농업생산의 불안정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생산자들의 자율, 자구적 노력인 품목별 전문조합 설립도 농·축협의 기득권 때문에어렵기만 하다.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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