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민선 제3기 농수축협 협동조합장 선거가 이달부터 본격화됐다. 4년만에치르는 이번 선거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조합원의 한표가 협동조합과 이나라 농어업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본보는 이번 선거를 맞아 협동조합 선거의 현장, 올바른 조합장상, 쟁점과문제점, 개선대안 등을 농어민 조합원 관점, 농어업 발전의 관점에서 제시하고자 특별기획을 준비했다.
지난달 26일,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거봉’포도로 이름 높은 충남 천안시입장면은 보이지 않는 열기로 조금은 들떠 있었다. 그것은 이날이 입장농협조합장을 뽑는 선거일이었기 때문.
이번 조합장 선거에는 지금까지 22년 동안이나 조합장직을 수행해오고 있고 농협 포도협의회장, 천안시 의회 의원 등을 겸임하고 있는 ‘관록’의현 조합장 민태일 후보(58세, 천안시 양대리, 기호 2번)와 정치참여 배제와특별히 ‘변화’를 내세운 천안시 성남농협 참사 출신의 권수식 후보(60세,입장면 신두리, 기호 1번)가 출마했다. ‘관록’과 ‘변화’라는 상반되는캐치프레이즈로 격돌한 것이다.
민태일 후보는 경력이 말해주듯 입장면에서는 독보적인 존재. 그가 내세운소견은 “오랜 경험이 있고 사업면에서 전국 11위의 복지농협을 이끌어온만큼 앞으로 합병을 주도하는 힘을 가진 사람을 밀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도전한 권수식씨는 “변화를 바라는 조합원의 뜻을 받들어 투명한 조합, 개방된 조합장실을 지향하고 정치에 참여하는 대신 농협업무에만 주력하겠다”고 나섰다. 권수식씨는 지난번 2기 조합장선거에서 후보로 나섰다가 ‘출자좌수 제한’으로 출마자격을 박탈당한 경험이 있는 터여서 주목되는 승부였다.
조합장 선거공고는 2월14일에, 후보자등록공고는 19일에 나왔다. 이에 앞서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홍준표)는 이사회가 조합원중에서 19인으로 위촉했다. 투표구는 5개로 나뉘었고, 조합직원이 선거종사원으로 선거사무를 도왔으며, 양 후보 진영에서 2명씩 참관인들을 임명했다.
선거운동은 현행 지역농협 임원선거규약에 따라 극히 제약됐다. 호별방문이나 길거리에서 인사하는 행위도 금지됐다. 선관위가 허용한 선거운동은후보 프로필과 간단한 소견, 선거일정을 알리는 선거공보외에 각 후보진영에서 제작한 16절지 크기의 2도인쇄 이하의 소형인쇄물 배포가 전부였다.
금품수수, 향응제공, 호별방문, 공중집회, 벽보부착, 가두방송, 기타 일체의 선거운동은 금지됐다. 다만 조합원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번엔 바꿔야되는거 아녀?” 라든지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지”하는 의견개진만이 나돌았다.
선거일인 26일,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5개 투표구에서 일제히 투표가실시됐다.
제4투표구인 효계리 1구 회관. 농촌지역의 특성상 투표는 오전 11시쯤 70%를 넘겼다. 오후 3시를 넘자 외지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투표가 마무리됐다. 후보들은 조합 본소 근처 다방에 진을 치고 각 투표구를 돌며 분위기를 체크했지만 가능성은 50대 50으로 보였다.
“돈이요? 이 지역이 가난한 곳도 아니고요, 요샌 돈쓰면 떨어져요. 조합원들 수준이 옛날같지 않아요” 넌지시 한 후보측 참관인에게 금품이나 향응제공 등을 물었지만 돈에 관한한 별 문제가 없다는 말이었다.
오후 6시 제1투표구이자 개표장소인 본조합 회의실. 선거관리위원장이 투표종료를 선언했다. 6시30분경 경찰관의 호송속에 각 투표구에서 봉인된 투표함이 속속 개표장에 도착했다. 선관위원들과 종사자들이 일일이 참관인들의감시속에 이상여부를 확인하고 7시10분경 개표가 시작됐다. 피말리는 개표는 2시간 20분만인 8시30분에 종료됐다.
결과는 ‘관록’에 대한 ‘변화’의 승리로 나타났다. 1천6백30명의 조합원 가운데 80.6%인 1천3백13명이 투표에 참여, 기호 2번 권수식 후보가 7백61표로 민태일 후보를 2백11표차로 눌렀다. 유효득표율은 58%. 왠지 모르게주눅들어 있던 권수식씨 진영에서 ‘만세’ 소리가 터져나왔다. 선거는 조용했지만 거봉포도의 고장 입장농협 조합원들은 ‘관록’에 의한 안정보다는 조합원 의견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변화’를 택한 것이다.
올해 시작된 민선 제3기 협동조합장 선거 초입에서 있었던 작은 지역농협의 선거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변화’와 ‘조합원 존중’, ‘공명선거’, 그리고 ‘충실한 조합 경영’이라는 농민 조합원들의 아주 당연한 교훈을 남기고.
이달부터 본격화된 민선 제 3기 협동조합장 선거는 내년 3월까지 이어진다. 농협은 전체 1천3백96개 조합 가운데 올해 4백62개(33.2%), 내년 8백42개 조합(60.3%)에서 선거를 치른다. 축협은 1백93개 조합중에서 올해 92개,내년 77개가 선거가 예정돼 있다. 수협도 올해 33개, 내년 44개 조합이 조합장 선거를 맞는다.
이번 민선 3기 조합장 선거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89~90년 사이의 민선1기 선거로 농협 민주화의 기초를 마련하고, 지난 93~94년의 2기 선거로 민주화의 정착을 도모했다면 이번 3기 선거는 민주화의 심화·발전을 기하는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특히 시장개방에 대응한 농어촌구조개선사업이 전환점에 와있고, 신용사업의 경우도 금융시장의 개방에 맞닥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합병과 지방자치의 본격 시행에 대응하는 것도 이번 3기 조합장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이번 선거에 임하는 농어민조합원들은 이런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자질있는 사람을 조합장으로 선택해야 한다. 변화하는 정세는 다시 한 번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공명선거 속에서 협동조합의 원칙을 실현하고 조합원 본위의 사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을 많이 당선시켜야 하는 과제가 조합원들에게 주어져 있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유지가 되는 기회, 정치적인 발판, 개인적 치부를 목적으로 조합장 선거의 참의미를 훼손하고, 선거를 타락과 혼돈으로 몰아가는 구태의연한 인사들이 발 못붙이게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선거에서 경험해 오듯 인적조직체인 협동조합에서 조합장을 잘못 뽑아 큰 후회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선택권은 조합원들에게 있는 만큼행사한 권리에 대한 책임도 조합원이 져야 한다. 이번 조합장 선거를 협동조합과 우리 농어업 발전의 큰계기로 승화시키켜 주기를 조합원 농어민들에게 기대한다.
발행일 : 97년 3월 3일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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